맨공 93일째 :
어제 새해가 되고, 오늘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대학>책에 탕임금께서 "진실로 날로 새롭고자 하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고 했는데, 무엇을새롭게 하라는 말인가?
어둠의 밤을 보내고 밝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때로는 피곤한 육신을 아늑하게 쉬게 하는 어둠이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는 어둠을 없애려고 달빛, 별빛 대신 전깃불을 사용하여 어둠을 잊고 지내기도 한다. 그래도 어둠은 밝음으로 이어지고, 밝음은 또다시 어둠으로 이어지는 게 세상 이치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천지의 운행 속에 우리도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나날이 늙어가고 죽어가는데,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말인가? 본래 태양 같은 밝은 본성을 환하게 밝하는 데에 새로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1도에서 영하 2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태양이 환한 날씨라 아내와 함께 즐거이 맨공길에 나섰다. 아내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무풍교를 지나서부터 맨발로 산길을 타고 부도탑 뒤를 돌아 무풍한송로로 해서 내려왔다. 총 8,000여 걸음을 걸었다.
준비해 간 책은, 먼저 <노자, 무위경영의 지혜> 제23장 '말 없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부터 읽었다. 말이 없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며, '도'는 얻고 잃음을 초월하기에 득실의 형상에 빠져 '도'를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예시조 한 가락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처럼, 시공을 초월한 도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맨발로 걷는 것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참전계경>은 제50조 '쇄우(鎖憂)'에 대해 읽었다. 쇄우는 근심스러운 일을 뚜껑을 닫아서 감추듯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모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힘이 부족하고 형편이 어렵다 하더라도 정성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올해로 93세가 되시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시는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했다. 어머니는 효부상을 4번이나 받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셨는데, 나는 그 어머니께 효성스러웠는지에 대한 반성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근심이나 아픔 같은 것은 묻어두어야 좋을지, 아니면 자기 돌아보기를 하면서 그것을 꺼내어 블랙홀 같은 것에 버리는 게 좋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보통 안 좋은 일은 묻어두고 마는데, 2년 전에 내가 수련한 어떤 단체에서는 과거의 일을 꺼내어 죽여버리는 수행을 했던 것이다. 그런 수행 중에,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라는 '일체유심조'가 강한 깨침으로 와닿았는데, 그 돈오를 어떻게 점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평상심이 도'라고 맨발걷기를 하면서 나날이 새롭게 하고, 평상심을 잘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한마디 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맨공은 나날이 새롭게 하여 평상심을 잘 유지하는 공부다."라고.
<참전계경> 제50조 쇄우(鎖憂) : 쇄우란 근심스러운 일을 뚜껑을 닫아서 감추듯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근심이 있으면 자식은 마땅히 그 근심을 풀어 화평하게 해드려야 한다. 근심을 안겨드린 뒤에 그 근심을 없애려 하는 것은 근심될 말을 부모의 귀에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 어쩌다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 드렸다면 비록 힘이 부족하고 형편이 어렵다 하더라도 정성을 다하여 근심을 덜어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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