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학교

맨발학교 86일째(171226)

마음산(심뫼) 2017. 12. 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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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공 86일째 :

  오늘 아침은 이곳의 기온이 0도라고 나왔다. 통도천의 물은 많이 녹아 있었지만, 발은 여느 날보다 더 시렸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1시간 10분이 넘는 산책길에 맨발걷기를 50분간 하고 왔다. 걸음 수는 총 7,800이 넘었다. 오늘은 특별히 천연가습기용의 솔방울을 몇 십 개 주워오느라 산을 타지는 않고 무풍한송길로 통도사 일주문 위에까지 왕복으로 다녀왔다. 일주문의 단청은 끝난 상태였고, '붓다의 미소'로 전시되었던 돌미륵부처도 어느 새 치워지고 없었다. 동짓달은 통도사에 화엄산림법회가 열려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었다. 보살들이 저마다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잘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부터라도 나 자신이 부처란 자각으로 더욱 정진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오가는 길에 마음공부는 역시 <참전계경>과 노자 <도덕경>의 한 대목씩을 읽고 해보았다. 도덕경(내가 읽고 있는 책은 윤홍식의 '노자, 무위경영의 지혜"이다. 그래서 단순히「노자」라고 하고 싶다.)은 16장 '진정한 왕이 되는 비결'에 관한 것을 공부했다. "텅 빔의 극치에 이르고, 고요함을 빈틈없이 지켜라."와 뿌리로 돌아간 고요한 자리인 "영원불변의 자리를 알면 남을 감싸 안을 수 있으며, 남을 감싸 안을 수 있으면 공정할 수 있고, 공정할 수 있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공정성도 결국 양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한 일을 찾아 베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 공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참전계경>에서는 '대천(待天)'에 대해서 공부했다. 대천이란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 반드시 하늘의 응답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하늘의 응답을 마음 깊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늘을 믿는 정성이 모자라는 것이니, 기다림도 한정도 없고 정성도 끝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하늘을 믿는 정성이 바로 자신을 믿고 참나로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맨공을 다녀와서 송방울 가습기를 만들어 안방에 비치했다. 이 또한 인연의 소치라 여기며, 우주와 통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천년송이 하나의 결실로 만들어 낸 분신인 솔방울! 이 솔방울 한 알에도 엄연한 우주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기에 솔방울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오늘도 맨공을 즐기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맨공는 나를 돌아보며 즐기는 공부다."라고.


<참전계경> 제43조 대천(待天) : 대천이란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 반드시 하늘의 응답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늘의 응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하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하늘의 응답을 마음 깊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늘을 믿는 정성이 모자라는 것이니, 기다림도 한정이 없고 정성도 끝이 없어야 한다. 비록 느끼고 응답함이 지나갔다 해도 스스로 하늘을 믿는 정성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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