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뫼(엄영섭)글

수능일의 산행기(051123)/심뫼

마음산(심뫼) 2006. 2.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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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일의 산행기

                                                                                                            심뫼 엄영섭

  계절은 어느새 찬바람 속에 국화 향기가 말라가고 단풍의 고운 빛깔들이 낙엽이 되어 뒹구는 늦가을이다. 수확이 거의 끝나서인지 한산한 들녘에는 겨울로 가는 고즈넉함이 흐르고 있다.

  하나 뿐인 아들을 수능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집에 오자마자 산에 갈 채비를 하여 길을 떠났다. 동료 교사들은 거의 다 수능시험 감독을 갔지만 난 고3학부형으로서 제외되어 시간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 결혼식 하객으로 서울 다녀오느라 산에 가지 못하여 산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고, 산의 정기를 받고도 싶었고, 아들 녀석에게 좋은 기운을 보내 주고도 싶어서였다.

  산행은 여럿이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홀로 일 때도 유익함이 많다. 건강이 덤으로 생기는 것은 물론이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도 있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홀로 나섰다. 여정은 작천정 홍류폭포에서 공룡능선으로 하여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가 영축산을 경유하여 백운암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잡았다. 등억산장이 있는 초입까지는 아내가 태워 주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산행인들의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서 15분쯤 걸어 폭포에 도착했다.


가느다란 폭포수를 바라보며, 지난여름 비온 뒤의 웅장했던 그 물줄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웅덩이에 떠도는 낙엽들을 사진 찍은 후,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곧장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코스로 오르는 사람들이 이삼여 명은 되어 보였다. 수인사를 나누기도 하면서 그들을 모두 추월하여 홀로 걷는 것을 즐기며 산과 하나가 되어갔다.

  누군가가 지구엔 돋아난 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내가 사는 이곳은 영남알프스가 있어 산행에는 더욱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언젠가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산을 내 마음속에 담아 살아가고 있다. 요즈음도 일 년에 이삼십 번 정도 산행을 하기에 산에 들면 물을 만난 고기마냥 근심을 잊고 흐르는 땀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산에 다녀오면 단전이 강화되어서인지 기운이 솟고 하여 아마 죽을 때까지 산은 즐겨 찾게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스스로 튼튼한 다리에 감사하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나누어 주는 그 기운들을 받으며, 천지기운 속에 인간임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걸었다. 도중에 다람쥐가 인기척에 놀라 숨는 게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설악산의 다람쥐들은 그토록 경계심이 없이 사람을 반기더니만 이곳의 다람쥐는 사람들이 믿음을 주지 않아서인지 겁먹은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들만의 본능인지도 모를 일일 거라 생각하며 계속 오르니 산속은 벌써 얼마나 추웠던지 고드름이 달려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조금 더 오르니 평소 익혀 두었던 비탈진 바위와 굵은 밧줄이 반겨준다. 줄을 잡고 오르다 보니 바위산 타기에 미쳐볼까 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바위를 타다가 어찌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어느덧 공룡능선의 칼바위 중턱에 들어섰다. 여기는 언양, 울산, 양산이 한눈에 보이는 능선이다. 이제부터는 이름에 걸맞은 칼바위 타기다. 인생길도 이런 스릴이 있어야 재미있을 거란 생각 속에 지나쳐 온 길들을 잠시 뒤돌아보다가 곧장 정상으로 향했다.

  언젠가 내가 산행을 안내할 때, 이 길이 무서워서 주저앉아 엉엉 울던 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여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그녀가 서울의 어느 유명대학 수시시험에 합격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 험난함을 헤쳐 나간 것을 추억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1시간 20분을 소요하여 드디어 해발 1209M의 신불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푯말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신성과 불성에 젖어 하늘과 땅을 연결 지어 보았다. 천지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턱없이 수련이 부족한 내가 십여 여 년 전 강화도 마리산(마니산) 수련에서 느끼던 그 푸른 기운들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간 선도 수련에 게을렀던 점이 반성되기도 했다. 나 말고도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 무슨 생각에 잠기었을까를 생각하며 영축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점심은 우리 종씨가 운영하는 신불산장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출타 중이었고 문은 길손들이 쉬어가라고 그런지 자물쇠 없이 겉으로 그냥 잠겨 있었다. 다시 올라와서 영축산으로 향했다. 이제 점심은 영축산 정상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햇살에 눈부시던 그 억새꽃들도 어느덧 무디어 스산하고,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또 다른 정취를 맛보게 하고 있다. 어느 여름날 이 억새밭을 지나다가 큰 독사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네 삶에도 언제나 위협과 위험은 도사리고 있는 법이라 생각하며, 억새밭 사이로 계속 걸었다. 이제부터는 온몸에 기운이 들어와 힘이 나기 시작하여 지나가던 부부가 날 보고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신명나게 걸었던 것 같다.

  폭포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영축산 정상에 도착했다. 올해만도 벌써 여섯 번째나 찾은 영축산정이라 정겨움이 더했다. 몇 해 전, 영축산을 근 백 번 정도 오르게 되었을 때쯤 어느 봄날에 한 꿈을 꾸었는데, 영축산 산정에 독수리 세 마리와 집채만한 코끼리 한 마리가 눈이 부시게 찬란한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이때부터 난 개인적으로 영축산을 독수리 ‘취(鷲)’자를 살려 영취산으로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나는 황홀경에 젖어 언제나 영축산정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튼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산이라 생각하며 산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멀리 아들의 시험장으로 마음으로나마 기를 보내 보았다. 그런  뒤 정상 표지석을 기념 촬영해 놓고, 먼저 도착하여 식사 중인 한사람과 막 도착한 두 사람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울산에서 온 불자로 비로암에서 백운암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내친 김에 정상에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였는데 오늘따라 정상에서 하던 장사가 쉬었다. 양산 어곡에서 왔다는 먼저 도착한 한 아주머니가 친구 몫으로 준비해 온 밥을 내어 놓았다. 마침 내게 젓가락도 세 개가 있어 내가 준비해 간 컵라면과 빵 등으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넷이서 의논을 모아 백운암 길로 향했다. 불연(佛緣)으로 통하고 산을 좋아하는 것으로 스스럼없는 동행이 될 수 있었다. 도중에 내가 영축산의 약수 얘기를 하였더니 양산서 온 분이 약수터에 대하여 들었다면서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 하기에, 금수약수는 설명만 하고 백운암에 가기 전에 있는 천장약수(일명 은수약수)로 안내했다. 이 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한참이나 밑에 있는 비로폭포에 물이 보이기까지 물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벽 틈에 자리하고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야말로 하늘에 감추어진 약수이다. 지난날 이 약수를 떠다 먹고 귀가 울리는 병(이명)이 나았다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었다. 물의 공덕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합장하여 절한 뒤, 수통 가득 약수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목을 축인 뒤, 기도를 위하여 양치질까지 하고 백운암으로 향했다. 

  
  백운암 바로 위 능선 바위위에 뿌리가 줄기로 변해 자생한 소나무를 보며, 생명의 끈질김과 위대함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곧장 백운암 경내로 들어섰다. 여기는 영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로 마치 설악산 대청봉에서 소청봉을 지나 봉정암에 이르렀을 때와 비슷한 감흥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선경(仙境)인 곳이다. 류인학이 쓴 ‘우리 명산 답산기’에서 이 백운암 옆을 지나기만 해도 선도(仙道)의 기운을 입어 유불선(儒彿仙)의 모든 종교가 한 뿌리로 돌아가는 성자들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르며 앞으로 여자들이 더 많이 여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일행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등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보아도,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산을 즐겨 찾는 것으로 보아도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 


  법당에 들어서서 곧장 기도에 들어갔다. 울산 보살네는 금강경 독송에 들어갔고, 난 108배 수련 후, 천수경 염불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들 녀석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어 보았다. 불전의 보시금도 평상시 같으면 이삼천 원이면 될 것을 이만 원이나 내었어도 마음은 흡족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바라는 것은 익히 잘 아는 일. 대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은 몸 건강하고, 좋은 기운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면 제일일 거란 생각이다.  

  기도를 마치고 넷은 다시 동행이 되어 비로암으로 내려왔다. 암자 주위에는 아직도 남은 단풍들이 늦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곳을 찾은 몇몇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제 저 잎들도 얼마간 더 버티다가 곧 겨울을 맞게 되고, 다시 봄을 맞아 새잎으로 바뀌리라. 계절의 순환이나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것이나 우리네의 한 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결부지어 보며 3단으로 된 등산지팡이를 접어 배낭에 꽂았다. 비로암에서 통도사를 지나 신평까지는 동행하던 울산 보살이 태워 주었다.

  내가 산을 한 바퀴 잘 타고 왔듯, 오늘 수능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도 그들의 긴 인생 여정에 하나의 관문을 잘 통과하여 저마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면서 이만 오늘의 산행기를 접는다.

                                                                               200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