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공 90일째 :
오늘로 어느덧 나의 맨공도 90일이 되었다. 내년 1월 7일(일)은 지리산 천왕봉에 산행이 잡혀 있어 맨공이 어려울 것 같고, 1월 10일이면 100회째가 된다. 100일이 된다 해도 그리 큰 변화는 없겠지만 서서히 변화가 느껴지고 있기에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맨공을 시작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성담 스님 말씀처럼 남 덕분에 내가 사는 것이기에 나와 남은 결코 둘이 아닌 것이다. 수업시간에 자연과 인공의 조화 등을 가르쳤지만, 인간인 나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분별자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다. 그 분별로 인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의 숨결 속에 존재하는 '한겨레'라는 의미만 새겨보아도 분별심은 많이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보아진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영하 1도에서 0도로 올라와서 그리 춥지가 않았다. 햇살은 없어도 마음은 상쾌했다. 지난 밤에 아프던 위의 통증도 가라앉고 허리띠 부분에 돋던 두드러기 같은 것도 사라졌다. 70여 일이 넘어서부터 두드러기 같은 것이 생겼다가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하루 만에 사라지고 또 다른 곳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등의 신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도 곧 지나가리라 보아진다.
오늘은 홀로라서 시간이나 거리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었다. <노자, 무위경영의 지혜> 제20장 '먹여주는 엄마를 소중히 여겨라'는 대목이 길고 생각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용피바위 뒷산만 올랐다가 곧장 노천정으로 내려와 무풍한송로를 왕복하여 걸으면서 책읽기에 전념했다.
첫 구절이 '절학무우(絶學無憂)'라는,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네.'이다. 무위의 도에 위배되는 유위의 견해를 내려놓을수록 도(양심)와 하나가 되어, 절로 자명해지고 지혜로워질 것이다는 말씀이다. 다음은 현상계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과 시비득실을 초월한 아득함이 광활하게 펼쳐진 경지, 희로내락을 초월한 고요하고 순수한 참나에 안주함 등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말단에 취하여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본질을 아는 자는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천지만물의 양육자'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는 내용이 핵심이기도 했다.
다음은 계속 읽어오던 <참전계경>의 '강천(講天)'에 대해 읽었다. 강천이란 하늘의 도를 애기하는 것인데, 순리에 따르라는 말씀이었다. 이를 위해 참으로 두렵게 여기며 삼가 마음을 흐트리지 아니하면 그 정성어린 뜻이 하늘을 감동케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오늘 현상계의 하늘은 흐렸어도 마음만은 흐리지 않도록 하는 게 공부라 여기며 1시간 남짓의 맨공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공부는 '노자'에 주눅이 들어 그 핵심은 잡지 못했지만, 이런 저런 욕심을 버리는 것이 공부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맨공은 욕심을 버리는 공부다."라고 한마디 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참전계경> 제47조 강천(講天) : 강천이란 하늘의 도리를 얘기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순리에 따르는 것이면 하늘의 길과 화합하는 것이 되고, 사람이 하는 일이 순리에 따르지 않고 억지로 하는 것이면 하늘의 길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순리를 알고 이치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하늘의 이치에 벗어남이 없는지를 거듭 생각하면서 하늘의 도를 얘기하여야 하며, 참으로 두렵게 여겨 삼가 마음을 흐트리지 아니하면 그 정성어린 뜻이 곧 하늘을 감동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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