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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와 道 사이… 난세 지식인 ‘7人7色’의 길

마음산(심뫼) 2007. 3. 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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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와 道 사이… 난세 지식인 ‘7人7色’의 길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짜오지엔민 지음, 곽복선 옮김/푸른역사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아시는지. 세상을 등지고 대나무숲에 살았던 일곱 명의 현자(賢者)를 일컫는 정도로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부귀와 명예를 마다하고 고고하게 살다간 도인(道人)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들은 우리 같은 속물들과는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죽림칠현은 단지 전설 같은 이야기 상의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서기 3세기 중국에서 파란 많은 인생을 살다간 이들이다. 중원이 위·촉·오 삼국으로 나눠져 있던 시기, 즉 난세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지식인들이다. 권력의 부침이 아침저녁으로 뒤바뀔 정도로 험한 세상에서 세상을 피해 마냥 은둔해 있었던 것만도 아니다.

바로 그 세상에 뛰어들어 (은둔도 그 중 한 방법이다) 목이 날아가기도 하고, 고관대작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으며, 세속의 온갖 잡다함을 술잔에 타 한숨에 들이켜기도 하면서 세상과 맞서 나갔다. 그들은 속세를 떠난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책은, 격변의 시대를 헤쳐간 죽림칠현을 생생하게 되살려낸 역사서이자 철학서다. 또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대에 어떻게 처세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지침서이자 권력의 암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치서적으로도 읽힌다. 무엇보다 칠현, 즉 일곱 명의 지식인 한 명 한 명의 족적을 정밀하게 추적,
그 속셈까지 훤히 드러내 보여주는 인물비평서다.



칠현은 혜강(223~262) 완적(209~263) 산도(205~283) 상수(227~272) 왕융(234~305)과 생몰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유령, 완함 등 7명을 일컫는다. 이들은 한때 죽림, 지금의 중국 허난(河南)성 자오쭤(焦作)시 북부지역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친밀하게 교류하며 청담(淸談·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철학적 담론)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의기투합도 한때, 종국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따라서 이들의 인생 역정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칠현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혜강이다. 죽림에서 처음 기거하며 다른 이들을 하나, 둘 불러모았으니 죽림의 주인 격이었다. 선비의 지조와 의연함을 지닌 채 위나라 사마씨들에게 맞섰던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혜강은 자신을 고위관리의 자리에 천거한 산도(칠현 중 최연장자)에게 절교서를 보냄으로써 사마씨의 미움을 사게 된다. 잘 나갈 수 있을 때 지조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화를 당한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완적이다. 넘치는 해학과 속 깊은 재주를 지니고 영웅의 기상으로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싶었으나 결국 사마씨 정권의 ‘꽃병’ 노릇에 머물고 만 인물이다. 그는 젊은 혜강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당시의 권력자 사마소에게 일언반구의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붓을 들어 군주도, 신하도 존재하지 않는 ‘무군무신론’을 써내려가며 슬픔을 달랬다. 하지만 혜강이 처형당한 지 1년 후 술독에 빠져살던 그 역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죽림의 장자(長者)’로 불리던 산도는 원만함의 대명사였다. 일찍이 노장사상에 침잠하여 세상사를 다투려 하지 않았고, 누가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깨끗한 관료로서 고위 관직에까지 오른 그는 죽림의 배움을 현실에 옮겨다 놓은 인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역시 부귀를 뿌리칠 수 없었던 인물로 후세들에게 비난받았다.

이밖에도 술로 세상을 퍼마신 유령, 스스로 미치고자 했던 완함, 죽림의 파수꾼 상수, 현학(玄學·도가의 학문)을 출세와 바꿨던 왕융 등 7명의 지식인은 그야말로 난세에 지식인이 갈 수 있는 길을 거의 대부분 보여주는 듯하다.

책은, 단순히 1700여년 전의 지식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도 아니다. 이들이 펼쳐 보이는 삶의 희비 곡선은 바로 오늘날 지식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당시의 지식인이었던 선비들은 자신의 학문을 이용, 세상을 경영해보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선 권력자에게 지식, 곧 자신을 팔아야 했다. 마치 오늘날 유력한 대선주자에게 줄서기 급급한 한국의 지식인들과 흡사하지 않은가(물론 차원이 좀 다르긴 하지만). 바로 여기에 지식인의 근본적인 비애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죽림칠현 역시 아무리 도가의 철학을 공부하고, 세속을 초월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세상을 움직여보고 싶은 욕망만은 결코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요즘 지식인처럼 줄서기, 곧 출세에만 급급하지는 않았다(왕융을 제외하고). 나서지 않아야 할 때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지조를 지켰으며, 어쩔 수 없이 권력과 타협했을 때에도 술독에 빠져 미친 척 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결국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따라서 ‘빼어난 속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는 이 책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다. 권력자가 왜 지식인을 필요로 하는지, 또 그 용도는 무엇이며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삼국시대 당시의 권력자에게 지식인은 ‘꽃병’, 곧 다른 사람의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필요한 장식품일 뿐이었다. 지식인이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용도폐기되기 일쑤였다. 오늘날은 과연 어떨까.

중국 상하이(上海)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빼어난 글 구성과 문장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옮긴 역자의 솜씨가 놀랍다. 꼭 필요한 주석을 문단 말미에 붙인 정성은 역자가 이 책에 쏟은 노고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특히, 옮긴 이가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현재 KOTRA 칭다오(靑島) 무역관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