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관련 수행

위빠사나 수행의 실제/보천스님 편역

마음산(심뫼) 2006. 7. 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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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수행의 실제

 -보천스님 편역 <부처님의 수행법>에서

 

*여기서는 부처님의 여러 수행법 중에서 '좌선 수행법'만 소개하기로 한다.


  위빠사나의 수행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섯 감각기관(眼 ․耳․鼻․舌․身․意)과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육체적 작용의 관찰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공부의 대상이 다를 수 있지만, 모두 부처님께서 설하신 염처경을 기초로 한다.

  이 책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수행되고 있는 마하시 스님(버어마)에 의해 확립되어진 수행법을 소개하겠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고 기초적인 것들을 소개했는데 혼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수행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수행하는 중에도 자주 수행 경험이 있는 스님을 찾아서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남방의 선원에서는 거의 매일  혹은 격일로 큰스님께서 수행점검을 하고 지도를 해 주신다.) 기초 수행 단계로써 제일 좋은 방법은 단기 출가(수행하는 동안 집을 떠나 선원에서 생활하는 것)로, 집중적으로  수행법을 익힐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이다.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스님이든 일반 신도이든 누구나 원할 때는 찾아가서 수행할 수 있는 위빠사나 선원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1. 앉는 방법

  염처경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숲 속 나무 아래나 조용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다리를 포개고 앉은 다음 몸을 바르게 세우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우선 수행자는 간편하고 느슨한 옷차림을 하고, 좌선하는 동안 방해를 받지 않을 가급적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리를 포개고 앉는다.

  결가부좌가 가장 안정된 자세이긴 하지만 어려우면 반결부좌나 그 밖의 편한 자세로 앉아도 된다.

  요즘 우리  나라도 입식문화가 보편화되어 다리를 겹치고 바닥에 앉는 자세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수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의자를 사용하지 않고 앉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 경우에 일어나는 다리의 통증도 위빠사나에서 좋은 공부의 주제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앉은 자세가 삼각형 모양으로 안정되게 한다.

  다음, 허리에 힘을  약간 주어 등과 머리를 곧게  세운다. 이때 너무 힘을 주어 뻣뻣해도 안되고 힘을 너무 빼서 느슨해도 안된다. 어깨를 한 번 올렸다가 내려뜨려 어깨에 힘을 빼고 편하게 한다. 오른쪽 손바닥 위에  왼손을 올려놓아 엄지손가락 끝이  서로 닿게 해서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그 다음 눈을 가볍게 감으면 준비는 끝난다.

    


        결가부좌 : 양쪽 발을  반대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완전히 올려 놓는다.

        손의 모양 :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손을 포개고 엄지손가락이 서로  살며시 닿게 한다.

        반결가부좌 : 한족 발만을  반대쪽 다리 위나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다.

        다른 방법 : 양발을 모두 반대쪽 다리 위에 올려놓지 않고 바닥에   닿게 놓는다.


   2. 호흡에 마음 집중하기

  숨을 들이쉴 때 배가 팽창되고 내쉴 때 배가 수축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배가 일어나고 꺼지는 바로 이 두 동작에 주목한다. 호흡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한다. 배가 일어나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려고 억지로 숨을  크게 쉴 필요는 없다. 숨을 들이쉴 때 배가 일어나는 동작에 주목하고 숨을 내쉴 때 배가 꺼지는 동작에 주목한다.

  들이쉬거나 내쉴 때, 각각 일어나는 배의 움직임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배에 마음을 밀착하여 한  순간도 틈을 주지 말고 따라 간다. 수행의 기초단계에 배의 일어남과 꺼짐의 동작을 분명히 느끼지 못한다면 한 손, 또는 두 손을 배에 대고 할 수도 있다.

 배의 일어나고 꺼지는 동작이 일어날 때 각각  '일어남', '꺼짐'이라고 마음속으로 뇌인다. 입 속에서  우물거리거나 소리를 내지 말고 마음으로만 해야한다.

 이 이름 붙이기는 마음을 집중의 대상에 주목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동작에  얼마나 마음을 밀착시켜 따라 가고, 주목할 수 있느냐이다.

 일어남이나 꺼짐에의 마음 집중은 일어남과 꺼짐의  동작과 동시에 되어야 한다. 일어남과  꺼짐이 항상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짧게, 빠르게, 느리게, 분명하게, 불분명하게, 굵게, 섬세하게,  긴장되게, 느슨하게, 계속적으로 혹은 단속적으로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일어나는 대로 관찰하고 주목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수행을 통해서 결국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의 무상함과 고(苦), 무아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일어남'과 '꺼짐'의 동작은 바람요소의 특성―동작, 이완, 긴장, 견고함 등―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작들을 관찰할 때 염처경의 '물질적 요소에의 마음집중' 에서 나오는 바람요소의 설정을 실제로 관찰한다.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수행에 관련된  이론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수행하는 동안은 이렇게  생각하거나 분석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아! 이 동작은 바람의 요소이고 저 딱딱함은 땅의 요소이다." 등으로 생각하거나 분석해서는 안 된다. 일어나는 것들을 생각이나 분석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느낌들을 알아채고 관찰해야 한다.


  3. 마음집중이 흩어질 때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는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 주목할  때 자주 마음이 흩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이 흩어지면 그 흩어진 상태를 알아채고 '흩어짐', '흩어짐' 또는  '생각', '생각'하면서 흩어진 상태에 주목한다.

  또 생각으로 걱정을  하고 있으면 '걱정'. '걱정'하면서 그 상태에 주목하고,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 '계획', '계획', 상상하면 '상상', '상상', 과거를 회상하면 '회상', '회상', 하는 방법으로 그 상태에 마음을 집중한다.  이렇게 마음집중을 하고 있으면 저절로 생각이 끊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배의 '일어남'과 '꺼짐'의 상태에 마음을 집중한다.

  이상의 설명에서처럼 위빠사나 선에서는 끊고 버려야 할 생각(망상)이 없다. 집중하던 곳에서 마음이 흩어져 다른  곳으로 가면 그곳을 다시 집중하면 된다. 즉, 망상조차도 공부의 대상이 된다.

  만약, 어떤  소리에 주의가 끌리면 '들림', '들림'하고 주목하다가 더 이상  주목하지 않게 되면 다시 돌아와서 '일어남', '꺼짐'을 한다. 또  몸의 어떤 부위나  얼굴이 가려우면 '가려움', '가려움'하고 주목한다. 일어나는 감각에 마음을  밀착시켜 그 감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더 강렬해지는지, 사라지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노력한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어서 긁고 싶어지면 긁고자 하는 의도에 주목한다. 그리고 나서도 아직  긁지 말고 잠시 동안 기다려보고 더 집중하다 보면 긁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긁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  긁을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천천히 해야 한  다. 긁는 동작을 포함한 모든 동작 즉, 가려운 부위쪽으로 손을 들어 올림, 닿음, 긁음, 시원한 감각, 본래의 자리로 손을 옮겨놓는 동작 을 빠짐없이 관찰한다.

  가려울 때처럼 아플 때도 '아픔'. '아픔'한다. 찌르는 듯한 아픔인지, 에이는 듯한 아픔인지, 잡아당기는 듯한 아픔, 또는 뒤틀리는 아픔인지 아픔의 종류를 알고 면밀하게 관찰한다. 또 아픔이 그대로인지 변하는지, 아픈 부위가  한곳인지 주위에 옮겨 다니는지 이런 방법으로 아픔의 여러 가지 양태에 주목한다. 정신적인 저항없이 고요하고 초연하게 아픔에 주목한다. 아픔이 사라지기를 혹은 그대로 있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만약 아픔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면 사라지기를 바라는 욕구에 주목해야 한다. 아픔이 사라지든지 그대로 있든지에는 초연해야 한다.

  만약, 이런 방법으로 주목할 수 있다면 아픔을 참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아픔은 우리를 빈틈없이 깨어있게 하기 때문에 위빠사나 선의 좋은 수행 대상이다.

  이 아픔에 주목하기(느낌에 마음집중하기)를 통해서도 역시 니르바나[열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아픔이 사라지면 다시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 주목한다. 아픔을 참을 수 없게 되어 다리를 바꾸거나 몸을 펴고자 할 때는 가려움에 주목할 때와 같은 요령으로 즉시 바꾸지 않는다. 바꿔놓고 싶은  욕구에 주목하고 아픔에 조금 더 주목한 다음 그래도 바꿔야 갰다면 아주 천천히 모든 움직임에 집중하고 관찰하면서 자세를 바꿔야 한다.

        침착하지 못함, 지루함, 졸림, 혐오감, 화, 갈망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들이 좌선 중에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일어날  때도 역시 먼저 알아채고 주목한 다음 다시 배의 일어남과 꺼짐으로 돌아간다. 좌선을 하는 동안 어떤 빛이나 환상 등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역시 그때도 이 빛이나 상(相)을 '보임',  '보임'하면서 주목한다. 이들 빛이나 상에 너무 오래 주목해서는 안 된다. 잠시 주목한 다음 다시 '일어남'과 '꺼짐'에  주목한다.

  초보자는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 주목하기를  끈기 있게 해야 한다. 끈덕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어남과 '꺼짐'을  관찰할 수 없을 때는 '앉음'과 '닿음'을 주목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일어남'과 '꺼짐'에 주목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일어남'과 '꺼짐'이 공부의 좋은 재료이고 많은 수행자들이 이것에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이고 혹은 몇 주 동안이라도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의 집중이  선명해질 때까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어남', '꺼짐'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그때 '앉음'과 '닿음'에 주목할 수 있다.  '앉음'에 주목할 때는 바로 앉아 있음을 알아채면 된다. 그냥  똑바로 앉아 있음을 알면 된다. '앉음'하면서 바른 자세에  주목하고, 그런 다음 오른쪽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감각에 주목한다. 다시  '앉음', 이어서 '닿음'하는데 이번에는 두손이 같이 놓여져 있는 감각에  주목한다. 다시 '앉음'에  주목하고, 이어서 왼쪽 엉덩이의 '닿음'에 주목한다. 다시 '앉음', 이어서 '닿음' 하는데 이번에는 두손이 같이 놓여져 있는 감각에 주목한다. 이런 방법으로 세곳에 '닿음'을 하는데 매번 교대로 '앉음'도 같이 한다. 즉 '앉음', '닿음Ⅰ', '앉음', '닿음Ⅱ', '앉음', '닿음Ⅲ'의 방법으로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앉음'과 '닿음'의 주목을 일정하게 빠른 속도로 할 수 있게 되고 '닿음'의 지점에 점점 더 분명하게 마음 집중이 된다. '앉음'과 '닿음'에 집중하는 동안 배의 '일어남'과 '꺼짐'이 분명해지면 다시 '일어남'과 '꺼짐'의 집중으로 돌아간다.

           <이 위빠사나 수련법에 대한 카세트테이프도 나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