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폭포
조운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눈먼 하루살이의 사랑
권갑하
불빛이던가
물 속 어롱대는 꽃그늘이던가
그날 밤
나눈
한 번의 사랑
마주볼
여유도 없이
마냥 은빛으로 설레었던가
하루라니
아아 하루가 일생이라니
단 하루를 위해
천일을
눈감을 수 있다니
순간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니
뼈 살 다 녹이는
불꽃,
그런 사랑이라면
물 속에 잠겨 흐를
천일이 두렵지 않겠네
천년을
땅 속에 묻혀
그댈
기다릴 수 있겠네.
ㅡㅡㅡㅡㅡㅡㅡㅡ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꽃이 된 글씨체
김순호
글씨란 씨앗들이 응어리를 풀고 있다
가슴에 묻어 둔 말 쭉정이가 다 됐어도
갈증 난 어둠 속에서
물이 올라 눈 뜬 시간
문해교실 화분 속 오래 묵은 뿌리들
깜냥껏 밀어 올려 뻗어가는 흘림체
불거진 손끝 마디마디
환한 길 피고 있다
남은 숨 불어넣는 꽃주름 버는 소리
굴곡진 삶의 줄기 향기로 감아올린
활짝 핀 칠곡 할매체 부푸는 꽃잎활자
ㅡㅡㅡㅡ
눈에 선하다
오시내
흰지팡이 앞세우면 못 봐도 보인다고
친절한 점자 블록 오늘따라 볼록한데
눈뜨고 살아온 나는 오목하게 살았다
박두진 문학관에 눈 감은 바람 한 점
해설 속에 들어와 발걸음 되짚을 때
설레는 안내 손잡이 귀를 쫑긋 세운다
한 권의 오래된 시 오감으로 열릴까
소리 듣고 떠오르는 청록의 젊은 봄날
몸으로 보는 사람들 귀담아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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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거울
임성구
써레질 해놓은 논이 산 그림자 비추고요
밤이면 환한 달빛 야금야금 먹습니다
가끔은 하나님의 눈물도 다 받아먹곤 하지요
오늘은 당신 보며 나를 양껏 비춰보네요
지나간 시절들이 일제히 떠오르더니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한들한들 꽃 피네요
어둠에도 진한 향기 있다는 걸 몰랐어요
오래도록 맴도는 이 따뜻한 향기에 그만,
눈물이
가당찮게 도네요
논거울 속, 별이 반짝!
복사꽃 먹는 오후
임성구
1.
아내가 시장에서 사 온 백도를 먹는다
물컹한 단맛들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어디서, 다가온 사랑이기에
이토록 너는, 만발한가
2.
천도복숭 먹으며 하늘로 간 여자여
그 봄날의 꽃가지가 바람에 출렁이면
어여쁜 웃음이 울컥, 젖꽃처럼 환하다
3.
햇살이 끈적끈적한 꿀물로 떨어지는 오후
손거울을 면경面鏡이라 부른 시절을 채록한다
한 장의 첫사랑이 부풀어
가슴이 그만, 꿈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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