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비봉 오층석탑
심뫼 엄영섭
초발심 다시 찾은
늠비봉 오층 석탑
아침기도 햇살 속에
사라지고 싶었던 몸
온 세상
소리 관(觀)하며
눈길마다 손길 편다.
(2012년 10월)
언젠가 복원된 경주 남산 포석곡의 늠비봉에 있는 오층석탑을 수수회 친구들과 함께 찾게 되었다. 처음 탑을 대하게 되었을 때, 그 자태가 얼마나 빼어나던지 한동안 표현할 말마저 찾지 못했다. 마치 장윤정의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가슴은 너무 떨렸어요. 그때 이미 예감했죠. 사랑에 빠질 것을......"이라는 '첫사랑' 노래 가사의 표현이 제격인 것 같기도 했다. 이 탑은 절세미인 같기도 하고, 운상기품이 넘치는 군자 같기도 하고, 도통한 도인 같기도 하고, 가까이 하였지만 감히 범치 못할 기운 덩어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여태껏 내가 본 탑 중에는 참으로 멋진 탑들이 많았지만, 이 탑은 그 나름의 절묘한 조화로운 멋이 느껴졌다. 이런 탑이 무너져서 한동안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을 얼마 전에 옛돌에다가 현재의 것을 짜 맞추어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라 여겨졌다.
이 탑에 대한 느낌을 시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었는데, 다른 일이 바빠서 그간 미루어 왔다. 그러다가 결국은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서 위와 같이 단행시조 한 편을 지어보는 것에 족했다.
위 시조에서 초발심을 다시 찾았다는 것은 복원된 탑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탑을 본 내 마음이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한 중의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그 언젠가 봉정암 아침 기도 중에 찬란히 비치는 아침 햇살에 설악산의 온 암벽이 황금덩어리로 변하는 관경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충동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소승불교 차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세상에 났으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살다가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소승적인 차원을 넘어 관세음보살과 같은 구도의 행각을 넘어 중생구제를 우선으로 일삼는 대승불교의 차원에서 이 탑에다가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우주만물과 소통을 하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을 담아보고자 했다. 이런 삶이 내 삶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런 가르침을 옛 사람들은 은연중에 탑을 만들어 무정설법으로 감화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12년 10월 25일 심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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