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아내에게, 처음 만난 다음 날 새벽(1984년 4월)에 쪽지로 보낸 첫 편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둘이 만나 이렇게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앞으로도 잘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내가 보낸 편지와 아내에게 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기에 <편지 모음>집을 만들어 놓고
가끔씩 보면서 설레이고 흐뭇했던 순간들을 그려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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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씨께
淸淨한 새벽입니다.
어떤 환상을 좇던 영혼들은 지쳐 아직
잠들어 있고, 몇몇 영혼들은 깨어나 어느
한 영혼과 벗하려는지 모릅니다.
佛心 가득히 전해져 오는 여명의 시각!
무례함을 무릅쓰고, "그대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맘 용서하오.
삼월 삼짇날 당신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전 그동안 누군가를 매우 찾았습니다.
저의 마음 모두를, 또한 저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묻어 둘 수 있는, 고향 같은
호수 같은 깊푸른 산 같은 여인을 말입니다.
당신은 봄비같이, 메말라 가던
내 마음의 산을 적셔 푸르게 가꿀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전 결심했습니다.
당신 영의 세계와 함께하기를.
하지만, 당신께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한 생을 삶에, 가장 인간의
가치를 발할 때가 사랑할 때와 사랑
받을 때일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그 의미로서도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날로
그 마음을 誠스럽게 하며, 진실된 마음
으로 하루 하루를 다독거리며, 살아 나가야
되겠죠.
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만, 다음 또
쓰겠습니다.
오늘 오후 꼭 한 번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관세음보살-
갑자년 사월 청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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