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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에는 ‘진리의 가지’ 주렁주렁/나무열전 / 강판권 지음/글항아리

마음산(심뫼) 2007. 7. 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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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에는 ‘진리의 가지’ 주렁주렁

나무열전 / 강판권 지음/글항아리

 

“나는 모든 것을 나무로 생각하는 ‘나무 병’에 걸린 환자입니다. 나무 병 환자는 나무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미친 나무선비’로 불리는 강판권(계명대 사학과·중국사 전공) 교수가 네번째 나무책을 펴냈다. 이번엔 나무와 관련된 한자(漢字) 이야기다. 나무에 숨겨진 비밀과 역사가 이처럼 한자로 일목요연하게 풀어질 수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추천사를 쓴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교수 말대로 “이 세상은 나무가 덮고 있는 곳”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끌어모아 무게를 달아도 나무들의 무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나무가 없으면 생명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한자에는 나무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다. 나무와 풀 부수가 으뜸으로 많고 단어도 제일 많다. 저자가 제목에 ‘열전’이라고 붙인 것은, 열전이 개인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듯, 나무라는 창을 통해 역사와 문자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단순히 한자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이 나무와 연관지어 소개된다. 무엇보다 한자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재미있게 한자의 체계며 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책을 살펴보면, 사실 나무처럼 인간과 친숙한 존재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근본 본(本)은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모습이다. 저녁 묘(杳)는 나무 밑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며 아침 단(旦)은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삼(森)은 나무가 한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인데, 우주간의 모든 현상을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한 것을 보면 나무는 근본이자 전부였던 것이다.

춘하추동의 시간과 관련된 한자 중에 나무와 관련된 말이 많다. 음력 2월은 매화를 보는 매견월(梅見月)이고, 음력 삼월은 앵두꽃이 피는 앵월(櫻月)이다. 5월은 꽃이 만발하며 향기가 구름처럼 자욱하기 때문에 향운(香雲)이라 했으며 벽오동잎이 지는 음력 7월은 오월(梧月)이다. 이즈음에 내리는 비를 오동우(梧桐雨)라고 했으니 넓은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무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의 재료였다. 밤나무로는 신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주를 율주(栗主)라 했고, 밤나무로 만든 다갈색 붓은 율미필(栗尾筆)이었으며, 오동으로 만든 거문고를 동군(桐君)이라 불렀다. 계수나무로 만든 수레는 계거(桂車)였으며 도낏자루를 부가(斧柯)라고 했다.

또한 나무는 출판의 판목(版木)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지식을 전파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재질이 단단한 배나무(梨)와 대추나무(棗)가 판목으로 많이 사용돼 이조(梨棗)는 출판을 의미한다. 가래나무(梓)는 워낙 고급목재인지라 국가에서 중요한 책을 만들 때만 사용했다. 그래서 ‘책을 상재(上梓)한다’는 말이 나왔다.

나무는 오래 살기 때문에 수명과 관련된 한자에 나무가 많이 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참죽나무(椿)는 특히 오래 산다. 그래서 장수를 의미하는 춘년(椿年), 춘수(椿壽), 춘령(椿齡), 대춘(大椿)에는 모두 참죽나무가 쓰였다.

나무의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면 마치 나무가 인간의 일생을 얘기해주는 것도 같다. 책은 그와 같이 구성돼 있다. 저자는 “한자가 공부의 대상이라면 나무도 공부의 대상”이라며 “양자의 결합은 새로운 뭔가를 창조하는 행위로, 인문학과 식물학을 창조적으로 만나게 하는 ‘인문식물학’을 구축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얘기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