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뫼(엄영섭) 글(사진포함)♠/긴글 모음(심뫼 산문 모음)

심뫼 산문 모음

마음산(심뫼) 2025. 12. 31. 10:40

육하원칙을 통한 리더십으로 행복 창조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그 세 가지는 정답이 없고공짜가 없고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언제 어디서나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 하리라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현실은 말이 아니다촛불이다 태극기다 해서 온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한 마디로 말해 리더십의 결여라고 본다그렇다면 어떻게 리더십을 갖출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리더십은 사전적으로 무리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또는 일을 결정하는 능력무리를 통솔하는 능력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는 능력 등을 말한다이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관계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그러기에 공익에 입각한 바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리더십물론 여기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육하원칙으로 그 기준을 제시해 볼까 한다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리의 '천지인(天地人)' 사상과 원리를 토대로 ‘언제어디서누가' '무엇을어떻게라는 육하원칙과 관련지어 보면서 리더십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첫째천지인(天地人) 3요소 중 하늘과 관련한 ‘언제이다이는 시간이요때요철을 아는 것이요과거현재미래와 관련한 것이요허공처럼 열린 것이요시시각각 변하는 것이요그 변화를 아는 것으로 곧 창의성과 연결되는 요소라고 하겠다그래서 ‘언제라는 때를 생각하고때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은 시대 상황을 아는 것이라고 하겠다앞으로는 제4의 물결이 펼쳐지는 시대라고 하는데이 시대의 리더가 되려고 하면 때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하늘처럼 열린 개방된 시대에 독점과 대립보다는 공유와 조화를 꾀하며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공자께서 말한 ‘시중(時中)’이라는 말을 새기고 항상 시간의 한가운데 들기를 바란다면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배양되리라고 본다.
   
  둘째천지인의 3요소 중 땅과 관련한 ‘어디서이다이는 공간이요곳이요자신의 처지를 아는 것이요저기여기거기와 관련한 것이요땅처럼 단단한 것으로 곧 전문성과 연결되는 요소라고 하겠다그래서 ‘어디서라는 장소를 항상 생각하고자신의 처지와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하겠다그리하다 보면 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지혜가 열릴 것이다.나무와 풀이 각각 자기 자리에서 자라듯 이 세상은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셋째천지인의 3요소 중 사람과 관련한 ‘누가이다이는 인간이요나와 너와 우리와 관련한 것이요하늘과 땅을 포함한 사람으로 때와 장소를 알고 사람을 알고자신이 누구이며무엇을어떻게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요,  남의 덕으로 살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곧 인성과 연결되는 요소라고 하겠다그래서 ‘누가라는 말을 항상 생각하면서 나는 누구이고지금까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더불어 무엇을 해 왔으며그 무엇을 어떻게 해 왔으며왜 그렇게 해 왔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면서 앞으로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서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이 우주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넷째, ‘무엇을에 관한 것이다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에게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이는 그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실한 목표 설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선 하늘사람에 견주어 다음 세 가지 말하고 싶다 하늘과 부합하는 참되고 떳떳한 일을 땅과 연결되는 전문적인 일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을 사람과 관련하여 자기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을 권하고 싶다.
  이를 덧붙여 설명하면 참된 일은 진실한 일이다이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 ‘이화세계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진리로써 이 세상을 보다 좋게 하는 것이다그러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진실한 일인가를 따져 보고 행동하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그리고 전문적인 일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말한다그런 일이 직업으로 이어지고 보람과 행복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또한 사람과 관련한 일은 우선 자기가 당해서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거나 남이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남에게 베푸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그런 일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다섯째,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이 어떻게 대해서도 ‘하늘사람과 관련하여 세 가지로 말하고 싶다 하늘처럼 새롭게열린 마음으로 땅처럼 단단하게지혜롭게 사람과 관련하여 다함께 더불어서 하라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창의성과 전문성과 인성이 자연스럽게 배양되리라고 본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이는 바로 실행이 그 답이라고 하겠다그런데 꿰어야 하되 어떻게 꿰어야 더 갚진 보배가 될 것인지는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어떻게에 대한 적절한 답변 기준은 그 하고자 하는 일이 ‘최선인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놓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자신이 하는 일에 항상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짐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따져 보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여섯째, ‘에 관한 것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왜 하는지조차 모른다면 그 일은 보나마나 의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여기에 대한 판단 기준도 하늘사람과 관련지어 세 가지로 말하고 싶다 하늘과 관련하여 ‘참되고 새롭기 위해’,  땅과 관련하여 ‘알고 깨닫기 위해’,  사람과 관련하여 ‘베풂을 위해라는 것이다 3개 항을 부연한다면날로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는 가운데 창의성이 길러질 것이며알고 깨닫는 가운데 전문성이 길러질 것이며더불어 일하거나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은 바로 삶의 보람으로 이어지고행복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라는 질문으로 항상 그 의미를 다지면서 리더십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상으로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함양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이 육하원칙은 기사문 작성에서뿐만 아니라 인격 도야를 위해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다.
  “언제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지금 하고어디서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여기서 하고누군가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나부터 한다.”는 육하원칙과 관련한 구호로 리더십을 발휘하여인간관계를 바람직하게 열어 갔으면 한다.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바로 지금부터여기서부터우리가 천지인 즉 이 우주의 주인공이라는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왜 해야 하는가를 알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그리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나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진실한 일이 될 것이며최선을 다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함께 행복한 세상이는 바로 여러분들이 이끌어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그러기에 육하원칙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여 진실한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베풂을 실천하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6년 12월)
 
 
 

<제18회 하북면민 정월대보름 전통 민속 달맞이, 달집태우기 행사>

 축문(祝文)

  때는 지금 단기 4357년, 서기 2024년 갑진(甲辰)년 정월 대보름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우수도 지나고 통도사에 홍매가 활짝 피어나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는 시절입니다. 이에 여기 영축산 아래 불지종찰 통도사 산문 옆에서, 양산소방서 하북면 남·여 의용 소방대원 일동이 주최하여 제18회 하북면민 정월대보름 전통 민속 달맞이, 달집태우기 행사를 거행하면서 천지신명께 삼가 엎드려 고하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들 중에서도 전깃불이 없던 깜깜한 밤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그 어두운 미망의 밤이 망상을 일으키고, 온갖 액을 만들어 내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정월대보름의 환한 달빛은 거룩한 광명이요, 구원의 손길이요, 반야 지혜의 빛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달집태우기의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온갖 액들을 날려 보내주시고, 저 달빛의 광명으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고, 환하고 둥글고 원만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신명이시여!
거듭 바라옵건대 갑진년 올 한 해에도 저희들의 이 축원과 정성과 어울림이 이어져, 우리 하북 면민들로 하여금 더욱더 밝고 따뜻한 사랑이 넘치고, 더욱 건강하고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그리고 타지에서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소원을 적어 발원한 그들께도 광명을 빛을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저희들 또한 큰 덕과 지혜와 능력을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나 서로 돕고 베풀면서, 다시는 이 땅에 화재와 같은 위험이나 온갖 재해가 없도록 그 예방과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둥글고 밝고 환한 표정으로 자유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끝으로 저희들이 나름으로 정성껏 준비한 이 음식과 한잔 술을 흠향하시고 부디 감응하시옵소서.
 

단기 4357년 서기 2024년 2월 24일 정월대보름날에
양산소방서 하북면 남·여 의용소방대원 일동 배(拜)
 
 
 

<2024년 청운산악회 시산제>

축 문

 
때는 지금 단기 4357년, 서기 2024년, 갑진년 1월입니다. 오늘이 소한을 하루 지나고 입춘을 한 달 정도 앞둔 날이지만, 새해 첫 일요일이기에 새로움의 의미를 담아, 저희 청운산악회 회원 일동은 저희들이 단골로 정한 이곳 영축산 아래 무풍지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자 시산제를 올리는 바입니다.
 
영축산신을 비롯한 대한민국 산신과 천지신명이시여!
저희 청운산악회가 1997년 2월 24일 창립하여 다음 달이면 27주년의 역사를 지니게 됩니다. 그동안 인연 맺었다가 추억만 남기고 인연 따라 떠난 사람들이나 회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산악회 활동을 하지 못한 시련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청운산악회는 아직 그 명맥을 잘 유지하면서, 여전히 한 가족처럼 잘 지내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과 여행과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러한 크나큰 은덕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산신령님, 그리고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들은 올해에도 산악회 활동을 통하여 더 큰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나누면서 자신들의 성품을 바로 트고, 홍익인간이라는 공적을 완수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워보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하늘땅과 하나 되어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바탕으로 분별 망상에서 벗어나 회원 상호간에도 더욱 넉넉한 정과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는 산악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바입니다.
 
산신령님, 그리고 천지신명이시여!
이러한 저희들의 서원과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올 한 해도 잘 지켜봐 주시고, 저희들이 언제 어디에 가든 무탈하고 안전하며 행복한 산행과 여행과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 드리는 바입니다.
 
이에 오늘 이곳에서 저희들이 정성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제를 올리오니 부디 흠향, 감응하시옵소서.

단기 4357년, 서기 2024년 1월 7일
청운산악회 회원 일동 배.

 
  
 

진로선택에 앞서 학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사람들은 누구나 끊임없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선택은 ‘틀림’보다는 ‘다름’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적용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가령 왼손잡이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이 계속 왼손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 관습에 맞추어 오른 손을 사용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왼손잡이를 보고 틀린 것이라고 하며 오른손 사용만이 옳은 것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선택도 마찬가지이다. 진로선택의 대원칙은 어디까지나 학생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그 선택에 앞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여기서는 그 마음가짐에 대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자신의 마음에 지침이 될 좌우명(座右銘)을 한 가지씩 가져보라는 것이다. 이 좌우명의 한 가지 예로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1음절어로 된 7개 단어를 소개하고 싶다. 그것은 꿈과 끼와 꾀와 깡과 끈과 꼴과 끝이다. 꿈의 소중함은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꿈이 없는 자는 바람 빠진 공과 마찬가지이다. 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인생의 목표가 되고 비전이 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끼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소질이나 재능이다. 이는 다음 단락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꾀는 지혜로움이다. 진로선택에도 지혜로움이 뒷받침 되어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깡은 의지이고 추진력이다. 꾀와 깡이 없다면 꿈도 이루지 못하고 끼도 잘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끈은 네트워크, 즉 관계의 중요성이다. 독불장군이란 말이 있듯이 무슨 일이나 시너지를 활용함이 성공의 지름길일 것이다. 꼴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이다. 이는 자신의 인성이 되고 능력이 되는 요인이라 하겠다. 끝은 항상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끝맺음이 좋아야 다른 시작도 잘할 수 있으리라 본다.
  둘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미리 정리해보라는 것이다.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라는 말이 있다. 진정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은 경쟁력이 될 것이며, 좋아하는 일은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진로선택 시 반드시 이 점을 챙겨보라는 것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요인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꿈과 끼를 펼쳐나간다면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고 성공은 보장되리라고 본다.
  셋째, 독서를 통해 경험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전해오는 “1만 권의 책을 읽고 1만 리의 길을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학생의 신분으로 1만 리의 길을 다녀보는 직접경험을 많이 해 보기에는 여건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독서를 하다보면 진정 자신의 진로가 보일 것이다. 이 독서는 창의성, 전문성, 인성 함양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며, 자신의 진로에 끊임없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이상으로 진로선택에 앞서 학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자신의 진로에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좌우명이 무엇이고,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독서 등을 통해 모자라는 점을 채워나간다면 결코 후회 없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그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2014.1.23.<'행복한 진로지도를 위한 멘토링 스타특강쇼' 원격연수 중에>
 
 
  
 

학생들의 욕설, 이대로 좋은가

 
   요즘 학생들은 입이 많이 거칠다. 욕설을 함부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욕설이 생활에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상하게 한다. 심하면 폭력이 되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더불어 잘사는 길은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리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욕설이 오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보이는 인력거꾼 김첨지의 아내에 대한 욕설은 차라리 정이 살아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비판 없이 사용하는 욕설의 효용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도 학생들의 욕설이 들려오고 있다. 이들의 욕설을 이대로만 두고 볼 것인가? 이에 그들의 자각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에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욕설’을 사전적으로 정의해 보면,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해서 자신에게 좋은 점이 무엇이 있겠는가? 영화 <황산벌>이나 <평양성>에서 적의 성을 공격하기 위해 전략상 하는 욕설이라면 재미있게 봐줄 만하다. 또한 비속어를 통하여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한다든지, 어떤 목적과 신념을 가지고 풍자와 개그를 구사하는 ‘욕 대회’ 같은 것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욕설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혼자서 하는 욕설도 삼갈 일이라고 본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늦가을의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바쁘신 일로 반장인 나한테 자습지도를 부탁한 바가 있었다. 그때 어떤 계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반 아이들에게 ‘욕하기 시합’을 해보자고 제의를 했다. 그런 뒤 나부터 교단에 올라가서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때 한 욕설 중의 일부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먼저 “남이야 벌거벗고 탱자나무에 올라가든지 말든지, 남이야 전봇대로 이쑤시개를 하든지 말든지...” 등으로 가볍게 몸을 푼 뒤, 본격적으로 비속어의 욕설을 토해내었다.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에 그만 큰일이 나고 말았다. 때마침 복도를 순시하시던, 엄하기로 소문이 난 교감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물론 잡혀 간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교감선생님께서 나보고 교무실에서 꿇어 앉아 있든지, 아니면 운동장에 넓게 깔린 낙엽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 내는 두 가지 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산골에서 자라 빗자루질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운동장 청소를 택했다. 그때 나는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도 하는 청소를 하면서 평생에 할 욕을 다 쓸어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지금껏 욕을 하지 않는 착한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나의 초창기 교단시절에도 학생들의 욕설이 더러 귀에 들렸다. 그때 교육의 한 방편으로 ‘욕절하기’라는 벌로 학생들을 지도한 바가 있었다. 이 벌은 욕을 한 사람이 욕을 들은 대상자에게 그 자리(주로 복도)에서 큰절을 올려서 사죄하는 것이었다. 꽤나 성과가 좋아 몇 년간 거의 욕설이 들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주유소 습격 사건>이나 <친구> 등의 영화가 나오고부터 마치 욕설이 젊음의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서 지도가 어렵게 되었다. 욕설은 이미 많은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의 ‘욕설 안 하기’에 대한 교육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다. 공익광고를 통해 자주 홍보 교육하는 것도 좋은 방편의 하나이겠지만, 이는 먼 바다의 이야기 같다. 우선 학교에서 졸졸거리는 시냇물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로 유입하는 교육부터 해볼 일이다. 욕설근절은 필자의 경우처럼 어떤 계기가 마련되든지, 아니면 교양인으로서의 철저한 자각이 뒤따라야 가능할 것이라고 보아진다. 그 자각을 도와주는 일이 우리 교사의 몫이기도 하다. 교양이란 남의 고충에 대해 생각해 주는 배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교양인으로서의 인성을 갖추도록 돕는 일이 교육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교육이념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지 않는가? 우리는 옛날부터 남을 부를 때 ‘님’이라는 말을 써 왔고, 인사말을 할 때에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님’이라는 용어는 ‘니마’에서 온 ‘태양신’이며, ‘고맙습니다.’의 ‘고마’는 ‘태음신’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남을 ‘신(神)’처럼 존중할 줄 아는 미덕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불교의 한 경전인 <천수경>에서도 입으로 지은 죄업부터 깨끗이 씻겠다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부터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입으로 짓는 죄가 그 얼마나 많은가? 우선 깨끗이 속죄부터 하고 볼 일이다. 이런 우리가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하는 욕설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욕설 근절에 대한 자각과 실천방안으로 다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우선,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이는 남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실천은 바람직한 인성 함양과 함께 바로 욕설 근절은 물론, 홍익인간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보아진다.
   다음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이다. 이러한 말을 자주 사용한다면 상대방도 분명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가는 말을 곱게 할 일이다. 그러면 반드시 오는 말도 고울 테니까.
욕설이 없는, 말씀이 향기로운 사회! 이는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있다는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지 않겠는가? 그런 세상을 기대해보며 이만 글을 접는다. (2015년 6월)
 
 
 

조지훈의 빛을 찾아 영양을 다녀와서

   우리는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나와 또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희구하며 진리의 세계화를 위해 사는 삶을 보람으로 여긴다. 세상에는 소통하는 길이 많을 것이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일반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문학이요, 여행일 것이라는 데는 공감한다. 이 둘을 합친 문학여행은 대상 작가의 정신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보인다. 산행과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그간 전국의 이름 있는 산과 유명한 사찰은 거의 다 다녀온 편이다. 이에 비해 문학여행은 아직 많이 모자란 것을 느낀다. 그 동안 나는 보길도에서 윤선도, 고창에서 서정주, 강진에서 정약용과 김영랑, 안동에서 이육사, 평창에서 이효석, 춘천에서 김유정, 옥천에서 정지용, 담양에서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등을 만나고 왔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곳이 많다는 것은 윤동주의 말처럼 내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으로 좋게 해석하고 싶다. 누군가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올해의 문학여행지는 경북 영양을 택했다. 여기도 그 언젠가부터 꼭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지훈의 유적을 직접 대하면서 그 정신과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여정으로는 이곳 양산에서 경주와 포항, 그리고 영덕을 경유하여 영양으로 가는 것으로 잡았다. 가는 길에 서석지와 선바위를 둘러본 뒤, 감천마을 어귀에 있는 오일도의 시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영양 군청부근에서 1박을 한 뒤, 주실마을에 가서 조지훈을 만나고, 다음에는 두들마을에 가서 이문열을 느끼고 궁중요리서를 쓴 정부인 장씨를 알현하고 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2010년 7월 28일(수)과 29일(목), 방학 중 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1박 2일을 잡아 아내와 둘이서 영양 답사여행길에 나섰다. 출발은 차량문제로 인해 점심식사 후에 하게 되었다. 때는 마침 장마의 막바지라 호우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큰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떠났다.
  경주와 포항을 지나 푸른 동해를 잠깐 대하고 영덕서 안동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가에서 복숭아 한 상자를 사서 차에 싣고 영양으로 접어드니, 선바위와 남이포가 우리를 반긴다. 이곳은 홍보지를 통해 사진으로 보았지만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영양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다. 

   선바위를 옆에 끼고 먼저 찾은 곳이 연당마을의 서석지이다. 이곳은 보길도의 세연정,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통 정원에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조선 광해군 5년(1613년)에 성균관 진사 석문 정영방 선생(1577년~1650년)이 '자연과 인간의 합일 사상'을 토대로 만든 조선시대 민가 연못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세연정과 소쇄원에 비해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다소 안타깝긴 해도 집주인의 정신만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서석(瑞石)은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이고, 지(池)는 연못이다. 여기에는 모두 90여개의 서석이 있는데 상운석, 와룡암, 선유석 등 저마다의 이름을 지니고 있어 그 나름의 독특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안영선 씨가 <살아 있는 문학여행 답사기>에서 이곳이 조지훈의 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고풍스런 유교적인 정원이었으나 선(禪)적인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연못에서 지고 있는 연꽃향기를 머금어 보다가, 수령이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보호수에 세월의 간격을 느끼면서 오래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했다. 연당마을이라는 이름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태화당고택을 비롯하여 많은 전통 고가옥들이 밀집해 있어서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선바위 관광지구다. 선바위와 남이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휴게소를 겸하고 있었는데,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주위의 시설물로는 영양산촌생활박물관, 분재수석전시관, 동굴형 민물고기 전시관, 고추홍보관 등이 있었다. 고추홍보관을 둘러보고 영양의 고추가 유명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곳을 나와 감천마을 어귀에 있는 오일도 시비를 찾아 갔다. 31번 국도변에 오일도의 시 <저녁놀>이 우리를 반겼다. 오일도는 바로 이 영양의 감천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문단 4호에 '한가람백사장에서'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35년에 사재를 털어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하였다. 이는 5호까지 발간되었으며 시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오일도의 처가가 조지훈의 고향인 주실 마을이라 그는 조지훈에게 시문학에 대한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작은 방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 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이 우주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오일도의 시 '저녁놀' 전문>
 
   시비(詩碑)를 사진으로 담고 시를 읽으면서, 이 우주에 붉게 타는 저녁놀보다 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날이 저물고 있어서 오일도의 감천마을에는 가보지 못하고, 붉은 꿈나라를 위해 영양읍 중심지로 향했다.
 
  영양군청 부근에 숙소를 잡아 두고,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식사도 할 생각으로 거리에 나섰다. 스치는 사람들이 순박해 보여서 좋았다. 가로등이 고추와 반딧불 모양으로 조형되어 있었는데, 설계자의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읍내를 한 바퀴 돌아 본 뒤, 숙소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 뒤 다시 숙소에 들려 홍보지와 준비해 간 책자를 통해 다음 날 여정을 챙겨 보며 일월산의 정기가 서린 영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7월 29일, 아침에 창문을 열어 보니 일기예보대로 장마도 끝나고 날씨가 좋았다. 뙤약볕이 구름을 마구 피어나게 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읍내를 돌아다니다 사 둔 빵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9시경에 숙소를 나섰다. 영양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라고 자랑하는 주실숲을 지나니 차량에 부착된 네비게이션과 이정표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 주실마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주실마을은 조용헌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 의하면, 세 개의 문필봉 정기를 타고 한 마을에서 박사만 14명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재물과 사람과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 이 원칙을 400 여 년 가까이 지켜온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이 있는 곳. '지조론(志操論)'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조지훈의 고향 마을! 이곳이 내가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발길 따라 마음이 머무는 땅임이 틀림없었다. 

 
   이 마을에서 먼저 찾은 곳이 지훈 선생이 태어나신 호은종택이었다. 이는 주실마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인조조에 입향조인 조전의 둘째 아들 정형(廷珩)이 창건했다고 한다.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고, 정침과 대문채로 나누어지며 솟을대문이 조화롭게 여겨졌다. 여기와 조지훈 본가에서 관심 있게 지켜 본 것이 문필봉이었다. 산의 형태가 글을 쓰는 붓과 흡사하게 생겼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일직선상에 안산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조동일 교수도 이 마을 출신이니 과히 일월산과 문필봉의 정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발길 따라 호은종택에서 지훈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찾은 곳이 '지훈시공원'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빛을 찾아 가는 길>이라는 시비 하나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 횡재인지 여기서 많은 시들을 대할 수 있었다. 때마침 관람객들이 없어서 애송시들을 큰 소리로 낭송해 보기도 했다. 내가 지훈의 시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파초우>의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는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이고, <승무>에서는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이다. 그 밖에 수능에 출제되기도 한 <석문>도 보이고, <완화삼>, <고사> 등 27편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마음 즐겁게 한참이나 머물다가 '지훈문학관'으로 향했다. 

 
  '지훈문학관'은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으로 세련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 선생을 후세에 길이 기리기 위해 건립한 문학관이다. 문학관 입구 오른편에는 조지훈의 산문, <삼도주>와 <멋설>이 게시판의 형태로 읽기 좋게 게시되어 있었다. 대학시절 즐겨 읽던 조지훈의 글들이 떠올랐다. 현판은 그의 아내 연담 김난희 여사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문학관에 들어서니 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계속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에는 조지훈 선생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훈의 소년시절 자료들, 광복과 청록집 관련 자료들, 격정의 현대사 속에 남긴 여운, 지훈의 가족 이야기, 지사로서의 지훈 선생의 삶, 지훈의 시와 산문, 학문 연구의 핵심 내용, 조지훈 선생의 선비로서의 삶의 모습, 그의 아내 김난희 여사의 글씨와 그림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물 중에는 지훈 선생이 쓴 주례사와 여러 곳에서 받은 감사장, 위촉장, 표창장 등의 자료를 비롯하여 평소 쓰던 문갑과 서랍도 있었다. 또한 평소 착용하였거나 소장했던 모자, 장갑, 부채, 담배 파이프, 안경, 외투, 삼베 바지 등도 연령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그의 삶의 단상을 보여주는 1백 개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헤드폰을 통해 그의 육성 시를 감상하게도 해 두었다. 이런 유물이나 전시장을 통해 우리는 떠난 사람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고, 다시 한 번 그를 느끼고 추모할 수 있는 것이다. 준비해 간 캠코더로 동영상 촬영을 해 보기도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다가 문학관을 나와 기념회를 할 수 있게 조성된 광장을 지나 월록서당으로 향했다.

 
   지훈시광장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5월 17일을 전후하여 조지훈 시인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문학예술제를 개최한다는 기록이 있었다. 축제 내용은 문학세미나, 시와 음악의 만남, 백일장과 사생대회, 지훈시화전, 문학 퀴즈, 지훈시 암송 대회 등과 야생화 전시회, 한지 공예 작품전, 솟대와 토우 제작 등의 전통문화 체험 등이라고 하는데, 꼭 참석해 보고 싶은 뜻 깊은 축제로 여겨졌다.
 
  월록서당도 문필봉의 정기가 감도는 곳으로, 지훈이 어린 시절 한문을 수학한 서당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인 이곳은 기록에 의하면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씨·야성 정씨·함양 오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다. 현판 글씨가 마음에 들어 알아보니,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蔡濟恭) 선생의 친필이었다. 이 서당에서 공부한 이들 가운데 많은 석학과 명현들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결코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지훈의 문학관에도 이에 대한 글이 보였다. 조용헌의 글에 의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는 '혜택 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라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몇 번이고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그리고 이 주실 마을 호은종택에 400년 가까이 내려오는 삼불차 정신은 바로 조지훈의 삶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처 그의 '지조론'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조(志操)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정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조지훈의 '지조론'에서>
   이처럼 선비로서의 대쪽 같은 지조가 살아있는 마을에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떠 올리며, 오늘날 우리 지도층의 책임감과 도덕성을 저울질해 보았다. 그러면서 그들에 비해 비록 보잘것없는 내 삶이라 할지라도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방향이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월록서당을 나와 마을 입구에 있는 보호숲인 '시인의 숲'이라고 명명한 곳으로 걸어갔다. 흰 구름이 푸른 하늘에 맑게 떠도는 가운데, 주실(주곡)마을의 정경은 한층 한가로워 보였다.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너니 영양에서 봉화로 가는 길가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숲에 가려 마을이 보이지 않아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년이 되었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가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2008년에는 이곳이 생명의 숲과 산림청이 뽑은 '올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조동진과 조지훈의 시비(詩碑)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찾은 것이 조지훈(본명 조동탁)의 형님인 조동진의 시비였다. <국화>라는 작품이 한글 고체와 한자 예서체로 쓰여 단아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슬픔의 정서로 가득 차 있었다. 

 
담밑에 쓸쓸히 핀 누런 국화야
네 그 고독의 자태가 아프다.
 
바람에 불려 불려 섧게 울어도
기다리는 나비는 그림자도 없고
 
서릿발 차운 손길에
마당가 오동잎새가 한 개 두 개
 
길게 살아 무엇하리
오래 살아 무엇하리
끝내 구슬픈 삶일 양이면
 
오! 국화 외로운 내 마음아
처량한 바람 소리에 가슴이 째진다. <조동진의 시 '국화' 전문>
 
   시비 뒷면에는 세림 조동진 시인이 21세에 요절하였다는 내용과 1940년에 조지훈이 형님을 위하여 추모의 글을 썼다는 것과, 아우 지훈 시인과 고우(古友)들의 애틋한 뜻을 받들어 누이동생 동민 여사와 장질 광열군의 정성에 의하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기 2000년에 이 비를 세운다고 적혀 있었다. 글씨는 덕봉 정수암 선생이 썼다고 되어 있었다. 이 비문을 읽다가, 옛날부터 조지훈의 시 <완화삼>에 나오는 '차운산'이 그 어디인가가 궁금하였는데, 바로 여기, 지훈의 고향 마을 산이라는 것이 짐작되었다.
   조동진의 시비에서 도로를 가로 지르니, 사진을 통해 익히 보던 조지훈의 시비, <빛을 찾아 가는 길>이 서 있었다. 반가움에 비석을 어루만지며, 따라 오지 않은 아내를 기다릴 수 없어서, 셀프타이머를 사용하여 기념 촬영도 해 보면서, 수업 시간에 몇 번이나 다룬 적이 있었던 이 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다.

사슴이랑 이리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紫雲 피어나는 靑銅의 香爐
 
東海 동녘 바다에 해 떠 오는 아침에
북바치는 서름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 보자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 가는 바람이 되라. <조지훈의 시 '빛을 찾아 가는 길' 전문, 비문대로 표기>
 
   조지훈이 추구한 '빛'을 나는 무엇으로 찾아가야 하는가를 화두로 삼으면서, 나 또한 슬픈 구름 걷어 가는 바람이라도 된다면 하는 염원을 품어 보는 사이에 아내가 차를 몰고 왔기에 다음 목적지인 두들마을로 향했다. 허공에는 바람이 일고 하늘에는 지훈의 희망처럼 먹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환하고 밝은 빛이 가득했다.
 
   내가 이 두들마을을 찾고 싶은 이유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문열의 고향마을이며, 전통 문화 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양군의 홍보지에는 이 마을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석보면 원리리(두들마을)는 조선시대 대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제령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석계고택, 석천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 채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라 새겨진 기암괴석을 비롯, 궁중요리서를 쓴 정부인 안동장씨의 유적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 작가의 고향으로서 그의 저서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라고.
   뙤약볕이건만 높은 언덕마을이라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며. 전통한옥체험관부터 찾았다. 한옥의 멋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우리나라도 아파트 대신 한옥이 몇 가지 형태로 표준화 되어 생활한옥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주곡고택을 거쳐 '광산문우(匡山文宇)'라는 현판이 걸린, '광산문학연구소'에 들렸다. 당호는 고향 뒷산의 이름을 빌려 왔다고 한다. 대지 750평, 건평 120평의 웅장한 전통 목조 한옥이다. 이곳은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하여 마련된 문학연구소이다. 그리고 작가 이문열의 집필실이자, 세미나와 다양한 문학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의 멋과 함께 문향(文香)이 은은히 감도는 느낌이 좋았다. 이곳저곳을 한바퀴 둘러 본 뒤, '자은헌(紫隱軒)'이라고 쓰인 정자에 올랐다. 선풍기가 필요 없는 바람에 취해 무심히 앉았다가 천지기운을 모아 발공을 해 보니 기운풀이가 잘 되었다. 마치 신선이 된 양했다. 이문열의 지기(知己)인 풍수연구가 최창조 씨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시흥(詩興)을 이기지 못하는 중에 퇴계 선생의 시조를 한 수 창으로 뽑아 보며, 유익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었다. 매미 소리마저 얼마나 정겹던지 올 여름은 그렇게 바람과 구름과 매미 소리와 더불어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두들마을이 자랑하는 정부인 장씨 예절관과 유물전시관이었다. 예절관은 문이 잠겨 있어서 입장하지 못하고 곧장 유물관으로 들어갔다. 관람객이 둘밖에 없었는데, 에어컨이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어서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황송한 마음으로 잘보고 가야지 하고 열심히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았다.
   안동장씨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가지 않았는데, 유물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니, 정부인 장씨(貞夫人 張氏 : 1598∼1680)는 다음과 같다.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나서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촌(石保村)에서 타계하였다.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므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가 내려졌다. 이 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식 디미방의 저자 정부인 장씨! 어머니이자 며느리요, 아내로서 모범이 된 장씨 부인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모르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을 통해, 여행의 효용성을 새삼 느껴 보았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그저 그렇게 살다가 소리 없이 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요, 삶이겠지만,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널리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 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두들에 와서 새로이 알게 된 시인이 바로 이병각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병각(李秉珏·1910~1941) 은 반제(反帝)와 순수(純粹)의 길목을 지키다 요절한 시인으로 영양의 이곳 두들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1929년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했으나 광주학생 사건의 여파로 퇴학당해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 도쿄 유학시절에도 반체제운동에 가담했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눈물의 열차’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며 기자로도 활동했다. 이육사·신석초·오장환·김동리 등 문인과 가까이 지냈으며, 1941년 31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시와 소설·평론·수필 등 50여 편을 남겼다. 시인이 생전에 남긴 작품들은 2005년 2월 '이병각 문학전집’(편저자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으로 발간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시비를 통해 만나게 된 <가을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뉘우침이여
베개를 적신다.
 
달이 밝다
베짱이 울음에 맞추어
가을밤이 발버둥 친다.
 
새로워질 수 없는 내력이거든
나달아 빨리 늙어라. <이병각의 시 '가을 밤' 전문>
 
  베짱이 우는, 달 밝은 가을밤을 지새우면서 새로움을 위해 뉘우치고 고뇌한 시인의 슬픔이 가슴 저리게 와 닿는다. 이 시인이 염원한 새로움이 그 무엇이었기에 그토록 베개를 적시며, 차라리 빨리 늙기를 바랐더란 말인가. 앞서 간 자들의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광복을 맞은 우리 후세들은, 이육사의 <광야>에 나오는 '초인'처럼 이 땅에서 마음껏 자유를 외칠 수 있지 않나 하는 고마운 생각이었다. 두들마을을 떠나 '만지송'이란 천연기념물을 찾아 먼발치에서 사진으로 담아 본 뒤, 곧장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여름의 뜨거움은 영양에서 고추의 매운 맛으로 대신한 느낌이었다. 조지훈의 '빛을 찾아 가는 길' 하나만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함이 넘쳐 난다고 하겠다. 일월산에 가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언젠가 산행할 것을 생각하니 그 기다림이 은근히 즐거워진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몇몇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중에, "피서를 어디 다녀왔는냐?"라고 묻기에, 영양을 다녀왔다고 하니, "영양이 뭐가 볼 것이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아는 이는 알리라. 영양에서 오일도와 조지훈을 만나고, 주실마을에서 '삼불차'의 교훈을 되새기고, 두들마을에서 이문열과 이병각과 정부인 장씨를 만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바람과 구름과 온갖 소리들을 통해 대자연과 소통하며, 전통 한옥을 통해 옛사람들과 소통하며, 선각자나 문인들이 일깨워 준 올곧은 정신을 조금이나마 체득하는 것으로 인해 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면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정진이라고.
   천지의 대자연 속에 진정 인간답게 사는 길이 그 무엇이고, 영원한 대자유의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끝없이 열리고 이어진 길을 걸으며, 또한 진리의 길을 나름대로 체득한 자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 또한 무명을 사르고 빛을 찾아 간다면, 가고 가는 가운데 그 길을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그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리라. 그리하여 진리가 우리의 삶을, 나아가 이 세상을 풍요롭고 이롭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대로 보고 느끼고 즐거워하면서, 조지훈의 빛을 찾아 떠난 영양에 대한 문학여행 답사기를 이만 접는다. (2010년 8월. 심뫼)
 
 
 
 

아내에게 보낸 첫 편지

 
다음은 아내에게, 처음 만난 다음 날 새벽(19844) 쪽지로 보낸 첫 편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둘이 만나 이렇게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앞으로도 잘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내가 보낸 편지와 아내에게 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기에 <편지 모음>집을 만들어 놓고  가끔씩 보면서 설레고 흐뭇했던 순간들을 그려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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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씨께
  淸淨한 새벽입니다.
  어떤 환상을 좇던 영혼들은 지쳐 아직 잠들어 있고, 몇몇 영혼들은 깨어나 어느
한 영혼과 벗하려는지 모릅니다.
  佛心 가득히 전해져 오는 여명의 시각! 무례함을 무릅쓰고, "그대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맘 용서하오.
  삼월 삼짇날 당신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전 그동안 누군가를 매우 찾았습니다. 저의 마음 모두를, 또한 저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묻어 둘 수 있는, 고향 같은, 호수 같은, 깊푸른 산 같은 여인을 말입니다.
 당신은 봄비같이, 메말라 가던 내 마음의 산을 적셔 푸르게 가꿀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전 결심했습니다.
 당신 영의 세계와 함께하기를.
하지만, 당신께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한 생을 삶에, 가장 인간의 가치를 발할 때가 사랑할 때와 사랑 받을 때일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그 의미로서도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날로 그 마음을 스럽게 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다독거리며, 살아 나가야 되겠죠.
  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만, 다음 또 쓰겠습니다.
  오늘 오후 꼭 한 번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갑자년(1984년) 사월]
 

 

 

수능일의 산행기

                                                                              
  계절은 어느새 찬바람 속에 국화 향기가 말라가고 단풍의 고운 빛깔들이 낙엽이 되어 뒹구는 늦가을이다. 수확이 거의 끝나서인지 한산한 들녘에는 겨울로 가는 고즈넉함이 흐르고 있다.
  하나 뿐인 아들을 수능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집에 오자마자 산에 갈 채비를 하여 길을 떠났다. 동료 교사들은 거의 다 수능시험 감독을 갔지만 난 고3학부형으로서 제외되어 시간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 결혼식 하객으로 서울 다녀오느라 산에 가지 못하여 산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고, 산의 정기를 받고도 싶었고, 아들 녀석에게 좋은 기운을 보내 주고도 싶어서였다.
  산행은 여럿이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홀로 일 때도 유익함이 많다. 건강이 덤으로 생기는 것은 물론이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도 있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홀로 나섰다. 여정은 작천정 홍류폭포에서 공룡능선으로 하여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가 영축산을 경유하여 백운암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잡았다. 등억산장이 있는 초입까지는 아내가 태워 주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산행인들의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서 15분쯤 걸어 폭포에 도착했다.
가느다란 폭포수를 바라보며, 지난여름 비온 뒤의 웅장했던 그 물줄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웅덩이에 떠도는 낙엽들을 사진 찍은 후,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곧장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코스로 오르는 사람들이 이삼여 명은 되어 보였다. 수인사를 나누기도 하면서 그들을 모두 추월하여 홀로 걷는 것을 즐기며 산과 하나가 되어갔다.
  누군가가 지구엔 돋아난 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내가 사는 이곳은 영남알프스가 있어 산행에는 더욱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언젠가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산을 내 마음속에 담아 살아가고 있다. 요즈음도 일 년에 이삼십 번 정도 산행을 하기에 산에 들면 물을 만난 고기마냥 근심을 잊고 흐르는 땀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산에 다녀오면 단전이 강화되어서인지 기운이 솟고 하여 아마 죽을 때까지 산은 즐겨 찾게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스스로 튼튼한 다리에 감사하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나누어 주는 그 기운들을 받으며, 천지기운 속에 인간임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걸었다. 도중에 다람쥐가 인기척에 놀라 숨는 게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설악산의 다람쥐들은 그토록 경계심이 없이 사람을 반기더니만 이곳의 다람쥐는 사람들이 믿음을 주지 않아서인지 겁먹은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들만의 본능인지도 모를 일일 거라 생각하며 계속 오르니 산속은 벌써 얼마나 추웠던지 고드름이 달려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조금 더 오르니 평소 익혀 두었던 비탈진 바위와 굵은 밧줄이 반겨준다. 줄을 잡고 오르다 보니 바위산 타기에 미쳐볼까 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바위를 타다가 어찌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어느덧 공룡능선의 칼바위 중턱에 들어섰다. 여기는 언양, 울산, 양산이 한눈에 보이는 능선이다. 이제부터는 이름에 걸맞은 칼바위 타기다. 인생길도 이런 스릴이 있어야 재미있을 거란 생각 속에 지나쳐 온 길들을 잠시 뒤돌아보다가 곧장 정상으로 향했다.
  언젠가 내가 산행을 안내할 때, 이 길이 무서워서 주저앉아 엉엉 울던 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여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그녀가 서울의 어느 유명대학 수시시험에 합격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 험난함을 헤쳐 나간 것을 추억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1시간 20분을 소요하여 드디어 해발 1209M의 신불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푯말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신성과 불성에 젖어 하늘과 땅을 연결 지어 보았다. 천지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턱없이 수련이 부족한 내가 십여 여 년 전 강화도 마리산(마니산) 수련에서 느끼던 그 푸른 기운들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간 선도 수련에 게을렀던 점이 반성되기도 했다. 나 말고도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 무슨 생각에 잠기었을까를 생각하며 영축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점심은 우리 종씨가 운영하는 신불산장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출타 중이었고 문은 길손들이 쉬어가라고 그런지 자물쇠 없이 겉으로 그냥 잠겨 있었다. 다시 올라와서 영축산으로 향했다. 이제 점심은 영축산 정상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햇살에 눈부시던 그 억새꽃들도 어느덧 무디어 스산하고,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또 다른 정취를 맛보게 하고 있다. 어느 여름날 이 억새밭을 지나다가 큰 독사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네 삶에도 언제나 위협과 위험은 도사리고 있는 법이라 생각하며, 억새밭 사이로 계속 걸었다. 이제부터는 온몸에 기운이 들어와 힘이 나기 시작하여 지나가던 부부가 날 보고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신명나게 걸었던 것 같다.
  폭포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영축산 정상에 도착했다. 올해만도 벌써 여섯 번째나 찾은 영축산정이라 정겨움이 더했다. 몇 해 전, 영축산을 근 백 번 정도 오르게 되었을 때쯤 어느 봄날에 한 꿈을 꾸었는데, 영축산 산정에 독수리 세 마리와 집채만 한 코끼리 한 마리가 눈이 부시게 찬란한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이때부터 난 개인적으로 영축산을 독수리 ‘취(鷲)’자를 살려 영취산으로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나는 황홀경에 젖어 언제나 영축산정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튼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산이라 생각하며 산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멀리 아들의 시험장으로 마음으로나마 기를 보내 보았다. 그런  뒤 정상 표지석을 기념 촬영해 놓고, 먼저 도착하여 식사 중인 한사람과 막 도착한 두 사람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울산에서 온 불자로 비로암에서 백운암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내친 김에 정상에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였는데 오늘따라 정상에서 하던 장사가 쉬었다. 양산 어곡에서 왔다는 먼저 도착한 한 아주머니가 친구 몫으로 준비해 온 밥을 내어 놓았다. 마침 내게 젓가락도 세 개가 있어 내가 준비해 간 컵라면과 빵 등으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넷이서 의논을 모아 백운암 길로 향했다. 불연(佛緣)으로 통하고 산을 좋아하는 것으로 스스럼없는 동행이 될 수 있었다. 도중에 내가 영축산의 약수 얘기를 하였더니 양산서 온 분이 약수터에 대하여 들었다면서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 하기에, 금수약수는 설명만 하고 백운암에 가기 전에 있는 천장약수(일명 은수약수)로 안내했다. 이 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한참이나 밑에 있는 비로폭포에 물이 보이기까지 물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벽 틈에 자리하고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야말로 하늘에 감추어진 약수이다. 지난날 이 약수를 떠다 먹고 귀가 울리는 병(이명)이 나았다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었다. 물의 공덕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합장하여 절한 뒤, 수통 가득 약수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목을 축인 뒤, 기도를 위하여 양치질까지 하고 백운암으로 향했다. 
  백운암 바로 위 능선 바위위에 뿌리가 줄기로 변해 자생한 소나무를 보며, 생명의 끈질김과 위대함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곧장 백운암 경내로 들어섰다. 여기는 영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로 마치 설악산 대청봉에서 소청봉을 지나 봉정암에 이르렀을 때와 비슷한 감흥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선경(仙境)인 곳이다. 류인학이 쓴 ‘우리 명산 답산기’에서 이 백운암 옆을 지나기만 해도 선도(仙道)의 기운을 입어 유불선(儒彿仙)의 모든 종교가 한 뿌리로 돌아가는 성자들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르며 앞으로 여자들이 더 많이 여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일행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등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보아도,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산을 즐겨 찾는 것으로 보아도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 
  법당에 들어서서 곧장 기도에 들어갔다. 울산 보살네는 금강경 독송에 들어갔고, 난 108배 수련 후, 천수경 염불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들 녀석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어 보았다. 불전의 보시금도 평상시 같으면 이삼천 원이면 될 것을 이만 원이나 내었어도 마음은 흡족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바라는 것은 익히 잘 아는 일. 대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은 몸 건강하고, 좋은 기운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면 제일일 거란 생각이다.  
  기도를 마치고 넷은 다시 동행이 되어 비로암으로 내려왔다. 암자 주위에는 아직도 남은 단풍들이 늦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곳을 찾은 몇몇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제 저 잎들도 얼마간 더 버티다가 곧 겨울을 맞게 되고, 다시 봄을 맞아 새잎으로 바뀌리라. 계절의 순환이나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것이나 우리네의 한 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결부지어 보며 3단으로 된 등산지팡이를 접어 배낭에 꽂았다. 비로암에서 통도사를 지나 신평까지는 동행하던 울산 보살이 태워 주었다.
  내가 산을 한 바퀴 잘 타고 왔듯, 오늘 수능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도 그들의 긴 인생 여정에 하나의 관문을 잘 통과하여 저마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면서 이만 오늘의 산행기를 접는다. (2005.11.23.심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결코 밝아 보이지가 않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교원 문제, 입시문제, 사교육비 문제 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우며, 백년 대계여야 하는 교육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보람으로 사는 교사로서도 사명감과 의욕을 잃어버리고 정신적 방황을 일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때 우리는 마냥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 모두의 해법을 교육에서 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한사람의 교사로서 바람직한 교사의 위상 제고와 함께 교육의 바른 방향을 모색해 보기 위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것이 시절 인연 따라 작용한다고 볼 때, 우선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상이 어떠한가가 문제된다. 우리의 교육은 인성과 창의성 쪽으로 가닥을 잡아 중점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 이러한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의 주체가 되는 교사의 역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 본다. 그래서 ‘좋은 선생님’과 ‘유능한 교사’ 쪽으로 논의를 좁혀 생각해 보고 바람직한 교사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볼까 한다.
  일반적인 의미로 ‘좋은 선생님’은 교사의 자질에서 인성적인 측면이 많이 강조된 ‘훌륭하다’의 의미, 인간적으로 정이 가며, 교육 자체를 사랑하며, 언제나 사랑이 흘러넘치는 교사로, 주위와의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잘 형성해 가는 쪽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해석된다. 이에   비해 ‘유능한 교사’는 교사의 자질에서 창의적인 면이 강한 ‘재능 또는 능력이 있다’의 의미, 교육적인 일을 제대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선망의 대상 쪽으로 해석된다. 또  ‘좋은 교사’라는 말보다는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며, ‘유능한 선생님’보다는  ‘유능한 교사’라는 말이 더 통용되는 점으로 보아, ‘좋은 선생님’은 교직을 성직관으로 볼 때 어울리며, ‘유능한 교사’는 교직을 전문직관으로 볼 때 더 어울리는 개념인 것 같다. 또한   우리의 교육법 제 1 조를 통해서 볼 때, ‘좋은 선생님’은 ‘인격 완성’적인 측면에서, ‘유능한 교사’는 ‘자주적 생활 능력 함양’이라는 측면에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 ‘좋은 선생님’보다는 ‘유능한 교사’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더 널리   쓰이며 거론되는 상황으로 보아, 이 시대는 그만큼 교사의 인성적인 면보다는 능력적인 측면을 강조한 ‘유능한 교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 미래 사회는 다양한 지식분야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평생학습을 요구하게 될 것인 바, 이에 교사는 낡은 교과 지식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습자에 대한 안내,  지원, 상담역할로 변화할 것이다.
  이를 위한 교사의 조건으로는 미래를 예견하고 적극 대응하는 교사, 첨단 교육 매체를 잘 다루며 이를 통해 받아들인 지식 정보를 수업에 잘 활용하는 교사,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영향을 주는 교사,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암 촘스키가 얼마 전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서 “훌륭한 교사란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진실을 깨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진실을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찾아가며, 역사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역사의 참여자가 되라고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이 시대는 교사들에게 변화의 흐름을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교사의   유능함’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유능함’에 대한 평가도 관점이나 가치관의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학생의 입장, 학부모의 입장, 교육 행정가 또는 관리자의 입장, 교사 상호간의 입장 모두에서 비추어 볼 때   보편타당성을 얻어야만 올바른 평가라 할 것이다. 이는 교사의 가르치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교사의 태도나 가치관, 정서 상태, 성장 배경, 경험의 축적, 교육과 훈련 정도 등의  특성들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작용하며, 학습자나 교육 환경의 제반 여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으로 ‘유능한 교사’는 제반 상호관계 속에서 공동선(善)을 추구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참되려고 노력하는 교사라고 하겠다. 이러한 교사는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요건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교사로서의 자질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하겠다.
  선행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교사로는 1위가 모든 일에 열성적인 교사로 나타났고, 다음으로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어 박식한 교사, 그 다음으로 무슨 일에나 협조적인 교사, 그 다음으로 학생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교사로 나타났다. 또한  좋지 못했던 교사로는 1위가 신경질적인 교사, 다음으로 대중 앞에서 개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교사, 그 다음으로 학생을 비꼬는 교사, 그 다음으로 편애하는 교사 순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해 거론할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직한 교사는 교직에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이 높으며,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기의 교과목이나 교양, 교수방법에 관해서도 전문적인 식견과 실력이 있어야 하며, 언제나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변화에 대해서도 능동적인 적응력을 갖추고, 최첨단 교육 기자재도 잘 다룰 수 있으며, 자기의 완성이나 교육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사라고 하겠다.
  이상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이 무엇인지를 ‘좋은 선생님’과 ‘유능한 교사’의 변별과 함께 살펴보았다. 시대의 변화 속에 지식기반의 사회 환경은 창의력과 모험심, 영재 교육,   기업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 정보 기술 인력 개발 등을 강조하며 ‘유능한 교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이 인간관계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인류 행복이라는 이상 실현을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요소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유능하면서 좋은 교사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사일 것이며, 이러한 교사가 교육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타개해 가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교사의 자질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연찬(硏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교사의 노력에 의해서 학생이라는 아름다운 구슬이 보다 잘 꿰어질 때 저마다의 빛을 유감  없이 발하는 더욱 값진 보배가 될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사의 힘이야말로 바로  지구촌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2001년 12월.심뫼)
 
 
 
 

어떤 교사가 유능한 교사인가

 
1. 들어가며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이하여, 교육에서도 변화의 물결과 함께 타개해 나가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시대는 교사의 역량을 크게 강조하게 될 것인 바, 이에 새로운 교육의 위상 정립을 위한 한 방안으로 교사론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시의 적절한 논의가 될 것이다.
 
2. ‘유능한 교사’와 ‘좋은 교사’의 개념 차이는?
  논의의 주제는 ‘유능한 교사’인데, 이는 분명 ‘좋은 교사’와는 변별력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아래 그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짚고 넘어 가야겠다.
  ‘좋은 교사’와 ‘유능한 교사’의 판별 기준이 무엇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이 기준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기준, 교육관 내지는 교직관에 따라 달라 질 것이기 때문에 복잡한 논의임에는 틀림없다.
  일반적인 의미로 ‘좋은 교사’는 교사의 자질에서 인성(성품)적인 측면이 많이 강조된 ‘훌륭하다’의 의미, 인간적으로 정이 가며, 교육 자체를 사랑하며, 언제나 사랑이 흘러넘치는 교사로, 주위와의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잘 형성해 가는 쪽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해석되며, ‘유능한 교사’는 교사의 자질에서 창의적인 면이 강한 ‘재능 또는 능력이 있다’의 의미, 교육적인 일을 제대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선망의 대상 쪽으로 해석된다. 또 ‘좋은 교사’라는 말보다는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며, ‘유능한 선생님’보다는 ‘유능한 교사’라는 말이 더 통용되는 점으로 보아, ‘좋은 교사’는 교직을 성직관으로 볼 때 어울리며, ‘유능한 교사’는 교직을 전문직관으로 볼 때 더 어울리는 개념인 것 같다. 또한 우리의 교육법 제 1 조를 통해서 볼 때, ‘좋은 교사’는 ‘인격 완성’적인 측면에서, ‘유능한 교사’는 ‘자주적 생활 능력 함양’이라는 측면에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3.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은?
  모든 것이 시절 인연 따라 작용한다고 볼 때,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상은 어떠한가가 문제된다.
  요즈음에 와서 ‘좋은 교사’라는 말보다는 ‘유능한 교사’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더 널리 쓰이며 거론되는 상황으로 보아, 이 시대는 그만큼 교사의 인성적인 면보다는 능력 쪽을 강조한 ‘유능한 교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 미래 사회는 다양한 지식분야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평생학습을 요구하게 될 것인 바, 이에 교사는 낡은 교과 지식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습자에 대한 안내, 지원, 상담역할로 변화할 것이다.
  이를 위한 교사의 조건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적극 대응하는 교사, 첨단 교육 매체를 잘 다루고 수업에 잘 활용하며 이를 통해 받아들인 지식 정보를 수업에 잘 적용해 가는 교사,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영향을 주는 교사,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이 요구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암 촘스키가 얼마 전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서 “훌륭한 교사란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진실을 깨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진실을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찾아가며, 역사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역사의 참여자가 되라고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이 시대는 교사들에게 변화의 흐름을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교사의 ‘유능함’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4. 몇 가지 예를 통해 본 ‘유능한 교사’에 대한 문제 제기
  1) 현재와 같은 승진 제도에서 한 교사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에 염증을 내고, 승진하기 쉬운 장학사와 같은 길로 나서려고 하고, 또 그 길로 들어서서 행정 업무나 본다면, 그리하여 가산점도 얻고, 승진이 빨라 교감, 교장이 된다면, 평교사로서 묵묵히 학생들을 성심껏 지도한 교사들과 비교해서 누구를 더 유능한 교사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2) 한 사람은 토익, 토플 등 각종 영어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학연수나 유학까지 다녀와서 회화 능력도 완벽할 정도인데, 다만 제도적 장치에 의한 교사 자격증이 없어 교단에 서지 못하고 학원 강사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들어가서 4년이란 제도적인 교육 과정을 이수하여 교사 자격증을 따서 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영어 교사로서 더 유능한가 하는 문제다.
  3) 한 사람은 학생들로 하여금 시중에 나온 참고서를 반강제적으로 다 사게 하여, 문제를 달달 외울 정도로 다 풀게 하여,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능력 있는 교사로 평판이 났는데, 한 사람은 자기 주도적 학습 원리를 강조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느라, 원리 학습을 시키다 보니 학생들이 교과 내용을 미처 다 소화해 내지 못하여, 성적이 낮았다고 할 때, 학부모나 관리자들은 어떤 교사를 더 선호하게 될까하는 문제이다.
 
5. 참으로 유능한 교사는?
  위 1)의 문제에서는 승진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교사 평가에 대한 사회 인식론 등의 문제가 맞물려 작용하며, 요즘 거론되고 있는 수석교사제 도입 문제도 맥을 같이 한다 하겠다. 2)의 문제에서는 교과목에 대한 실력만 있으면 유능한 교사가 되느냐, 아니면 교육에는 그 외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의 접근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3)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속에 가시적인 결과만 놓고 나름대로의 이해관계에서 교사를 왜곡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놓고 볼 때, 유능한 교사에 대한 평가는 평가 대상이나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지만, 학생의 입장, 학부모의 입장, 교육 행정가 또는 관리자의 입장, 교사 상호간의 입장에서 비추어 볼 때, 보편타당성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교사의 가르치는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교사의 태도, 가치관, 정서, 성장 배경, 경험, 교육과 훈련 정도 등의 특성들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작용하며, 학습자나 교육 환경의 제반 여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으로 유능한 교사는 제반 상호관계 속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참 되려고 노력하는 교사라고 하겠다.
  
6. 일반적인 바람직한 교사상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바람직한 교사상을 설정해 놓고 이를 거론할 때, 교직에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이 높으며,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교과목이나 교양, 교수방법에 관해서도 전문적인 식견과 실력이 있어야 하며, 언제나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변화에 대해서도 능동적인 적응력을 갖추고, 최첨단 교육 기자재도 잘 다룰 수 있으며, 자기의 완성이나 교육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선행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교사로는 1) 모든 일에 열성적인 교사, 2)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어 박식한 교사, 3) 무슨 일에나 협조적인 교사, 4) 자기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교사로 나타났으며, 좋지 못했던 교사는 1) 신경질적인 교사, 2) 대중 앞에서 개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교사, 3) 비꼬는 교사, 4) 편애하는 교사로 나타났다.
  
7. 결론
  시대의 변화 속에 사회 환경은 지식기반(정보)사회를 강조하면서 창의력과 모험심, 영재 교육, 기업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 정보 기술 인력 개발 등을 강조하며 ‘유능한 교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이 인간관계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인류 행복이라는 이상 실현을 위해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요소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유능하면서 좋은 교사가 교육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타개해 가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교사의 자질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연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아름다운 구슬이 이러한 교사의 노력에 의해 잘 꿰어질 때 더욱 값진 보배가 될 것이다. (2001년 6월.심뫼)
 
 
 
 

탁구 회관 개관 고사 축문

  
유세차 을유년, 서기 2005년 OO월 OO일 저녁에, OO탁구동우회 회원 일동은 여기 OO산 아래 터, OO탁구동우회관에 엎드려, 삼가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하여 고하나이다.
 
  오늘은 바로 우리 탁구동우회 회관을 OO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여 새로이 개관하는 실로 감개무량하고 의미로운 날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 년 전부터 건강과 우애 증진이라는 기치아래 우리 동우회가 결성되어 생활의 활력소와 함께 OO의 탁구 발전을 선도해 왔습니다. 때로는 많은 역경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반가운 얼굴로 건강과 우애를 다지면서 정겨운 인간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자부해봅니다.
  이 모두 우리 회원들의 단결된 힘과, 또한 물심양면으로 늘 도와주시는 여러 기관단체장님이나 선배‧제현 여러분의 많은 도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앞으로도 우리들의 우애와 건강과 화합이 늘 지속되도록 잘 보살펴 주시옵소서.
  탁구를 통하여 그 작은 공에서 묻어나는 천변만화의 도와 서로 주고받는 인간관계를 알기에 우리들은 더욱더 분발하여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힘쓰겠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들이 바라는 이 모두가 원만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들에게 언제나 건강과 삶의 활력을 주시옵소서.
 
  금일 우리 회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정결한 제수를 정성껏 마련하여 우리들의 서원과 함께 천지신명께 올리오니,
삼가 흠향하소서.

서기 2005년 OO월 OO일
OO탁구동우회 회원 일동
 
 
 

 

통도불교청년회 창립취지문

  
  어떻게 사는 게 참 삶의 길인가에 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우리는 막상 용기 있게 그 길을 찾아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행히 뜻있는 자들이 함께 모여 통도불교청년회를 만들어 보다 의미로운 삶을 살아 가고자 합니다.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인간이 살아가야 할 큰길을 열어 주셨고, 그 불교가 이 땅에 전해진 뒤부터 지금껏 1600여 년 동안, 불교는 실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산업화가 거세어지면서 급격한 전통가치관의 몰락,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혼돈, 인간성의 상실 등 갖가지 문제점들이 대두되고 있는 바, 이러한 혼탁이 날로 더해가는 사회 속에서도 오늘의 불교가 중생구제의 원력을 다하지 못함을 보고, 우리의 작은 힘이나마 향이 되고, 초가 되고, 목탁이 되어, 청정한 불국토건설의 한 몫을 담당하고자 이렇게 모였습니다.
  옛말에 "등잔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는데, 불지종찰 통도사라는 대가람 밑에 살면서 그동안 우리는 불법 깨치는 일이 우리와는 거리가 먼, 스님들만의 일로 등한시 해 오지 않았나 합니다. 바라다보면 영축의 봉우리가 성큼 다가서고, 귀를 열면 송림사이로 맑은 냇물을 따라 청정 법음이 전해져 오는 마을에서 늦게나마 발심을 내어 법회를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첫 발심할 때에 정각을 얻는다. 이때 사물의 진실한 본성을 알고 지혜의 몸을 갖춰 스스로 깨달음의 눈을 뜨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온 누리에 충만하신 부처님의 품안에서 묘법의 진리 따라 깨끗한 양심에 선악을 바로 물어, 화합하고 명랑한 복된 사회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나무반야바라밀
불기 2535511

 
 
 
 
 

불교학생회 수련대회 동참기

 
  보광중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통도불교학생회가 조직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고, 내가 학생회를 맡은 지도 어언 4년이나 되었다.
  우리 학생회는 불보사찰인 통도사라는 좋은 여건 아래 훌륭한 스님들의 열성어린 지도 덕분에 그 명맥을 잘 유지해 가고 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학생들의 신심이 예전 같지 못한 듯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바로 대가람 아래에 살면서도 그 빛의 밝음을 바로 느끼지 못하고 미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것을 바로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수련대회인 셈이다.
  이번에도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회에서는 722일부터 725일까지 34일간 고운사, 김용사, 직지사에서 수련대회를 가졌다.
  먼저 의성 고운사 대웅전에서 결제식을 가진 후, 절 아래에서 야영 준비를 했다. 스스로 밥을 지어 공양을 하고, 텐트에서 잠을 자는 것도 일종의 수련이라면 수련이었으나. 학생들은 야영생활이 마냥 즐거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번 수련대회는 절하기와 참선을 주로 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새벽예불에 참여하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힘든 일과 중의 하나였다.
  23일 오전에는 고운사 근일 큰스님께 법문을 청해 들었다. 스님께서는 처음과 끝이 중요하다시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믿음과 윤리 도덕과 철학을 갖고, 온 우주의 근본인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과,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보살도에 대해서도 설법하셨다.
  나도 실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곳곳에서 참선 중이신 스님들의 바른 깨치심을 빌며, 고운사를 떠나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댐에 잠시 들려, 스님의 법문 중 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물은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소가 받아들이면 우유가 되고, 뱀이 받아들이면 독이 되고, 지옥 중생이 받아들이면 불이 되고, 부처님이 받아들이면 감로수가 되듯, 같은 하나의 사물을 놓고 받아들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묘법. 깨닫고 보면 둘이 아닌 이치가 저렇듯 분명한 차이로 나타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안동서 버스를 전세 내어 점촌 김용사로 향했다. 계약대로 차비를 다 지불했건만, 비포장도로라고 투덜대는 기사아저씨의 성화가 어찌나 심하던지, 차비까지 주시던 고운사 스님과 비교해 볼 때, 언제쯤 둘이 아닌 마음이 되어 복된 사회를 이룰까 하는 생각과 함께 중생들에 대한 교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은 오후 늦어서야 김용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김용사는 통도사와 관계 깊은 절이고, 지도 법사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여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저녁 예불 후에 주지스님으로부터 이 절의 유래와 대웅전에 모셔진 탱화에 대해서 얘기 들었다. 우리가 여기를 찾게 된 것도 인연으로 인한 일. 이곳에는 때마침 전생에 이 절의 스님이셨다는 독일 승려 한 분이 와 계신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우리도 우리의 업력을 어떻게 지어나가야 하는가가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배움에 충실치 못한 데 대한 참회의 절 수련과 참선 수행을 하다가 10시부터는 야영장에서 불꽃축제를 가졌다. 이글대며 타오르는 불꽃 아래 학생들의 젊음도 타올랐다.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불꽃.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거룩한 도를 실천하는 양 불꽃은 그렇게 거룩하게 타올랐다. 무명이 소멸되어 가듯 우리네의 마음 깊이에도 지혜광명의 불이 밝혀졌다.
  24일에는 감천 직지사로 내려 왔다. 직지사에서는 수련 여건이 맞지 않아 비로전에서 예불만 드리고, 냇가에 둘러 앉아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끝내었다.
  25, 경주를 경유하여 통도사로 내려와 회향식을 가진 후 몇몇 학생들의 소감 발표와 함께 수련대회의 막을 내렸다.
  이번 수련대회를 통해, 학생들은 제각기 삶에 대한 바른 원을 세우게 되었으며, 더욱 불심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듯 젊은 학생 불자들이 바른 불법을 만난 인연 공덕으로 각자 마음의 눈을 뜨고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불기 2533, 단기 4322, 서기 19897월에. 심뫼)
 
 
  

 영산학원 30년사 편집 후기

 

   저 푸른 하늘 한 쪽 신령스런 영축산정에 햇살이 환하다. 백두대간의 맥을 이은 헌걸찬 봉우리가 독수리의 형국으로 날개를 펼쳐 든 곳! 그 아래 터전을 잡은 영산학원(靈山學園)’은 이제 보광(普光)’이라는 찬란한 빛을 온 누리에 밝히고도 남을 만하다.
   “도약(跳躍)30! 새로운 비상(飛翔)을 꿈꾸며.” 이는 영산학원 30년사 발간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내건 표어이다. 산을 타는 사람이 숨 가쁘게 정상에 오르고 보면 지나 온 발자취를 그려 보게 되고, 또 다시 새로운 산에 대한 도전과 열정을 품게 됨은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힘겹게 이러한 일을 하는 것도 과거를 거울삼아 새로운 비상을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영산학원 30년사!
   30년 성상이라면 사람으로 치면 장년의 나이요, 강산도 세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이요, 한 세대의 흐름이다. 영산학원은 이제 그 경륜과 씩씩함과 슬기로움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요람으로 거듭나려 한다.
   돌이켜 보면, 30년사 발간은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뜻에 의해 20057월부터 시작되었다. 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몇 차례의 편찬회의를 거쳐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30년이 되는 2005년 말에 그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이제야 책을 내게 된 점이 송구할 뿐이다. 그러나 그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행히 <영산학원 10년사>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10년사 이후로 이러한 작업에 대비하여 자료를 제대로 챙겨두지 못했음이 내내 반성과 함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구형 컴퓨터로 방대한 용량의 사진 파일들을 정리하려니 겨울 방학을 거의 소비하고도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학기 중에는 일과에 밀려 뜻은 있어도 일에 손을 대지 못하다가 컴퓨터가 새 것으로 교체되어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막상 책이 나올 시점에 한편으로는 뿌듯함과 다른 한편으로 많은 두려움이 앞선다. 뿌듯함이야 노력에서 오는 일에 대한 보람이겠지만, 두려움은 이 책이 어느 정도의 정확성과 흡족함을 주는가하는 점이다. 지난 30년간 쌓아 온 금자탑! 그 숱한 이야기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고,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정신을 담아 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부족한 점들은 앞으로 40년사, 50년사 작업에 밑거름이 되게 미리 준비 해 나갈 것도 다짐해 본다.
   비록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빚어진 이 책이 영산(靈山)의 신령스러운 정기를 받은 황금빛 찬란한 독수리의 새로운 비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이 <영산학원 30년사(靈山學園 三十年史)>가 편찬되기까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재단 이사장님, 고 교장 선생님과 많은 도움을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산학원이여! 보광이라는 이름과 함께 영원할지어다.
(20061030)

 

몸 기 마음을 조화롭게

                                   

   요즘 사람들은 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다. 실제 수련은 해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전호흡(丹田呼吸)이나 기공(氣功) 수련이 건강이나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84년도에 김정빈의 소설 <단(丹)>이 세상에 나오고부터 단(丹)의 선풍이 불기 시작하여 이제는 단학(丹學)이니 선도(仙道)니 하는 것이 일반인에게 호기심의 정도가 아닌 건강의 차원과 수행의 차원에서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선도 수련을 하고 있는 바 여러 가지 느끼고 얻은 바가 많아 인연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수련의 동기 유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선도(仙道)는 우리 겨레 고유의 전통적 심신 수련법으로서 몸 공부, 기 공부, 마음 공부를 통하여 개인의 자아완성(自我完成)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현실에 맞게 간단히 말하면 몸 건강해지고 마음 편안해지는 것이다.   단학(丹學)이라고도 일컫는 이 선도(仙道)는 우리 겨레의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詮戒經)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천부경은 조화경(造化經), 삼일신고는 교화경(敎化經), 참전계경은 치화경(治化經)이라 하는데 특히 삼일신고의 진리훈 속에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감이 마음 공부, 조식이 기 공부, 금촉이 몸 공부라고 쉽게 말 할 수 있다.
  이 3가지 공부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3태극 모양으로 물려 돌아가는데, 쉽게 비유하자면, 몸은 자동차 차체, 기는 차의 부속품이 잘 돌아가게 하는 각종 기름, 마음은 운전사라 하겠다. 차체와 각 부속품이 좋아야 하고, 기름이 좋아야 하고, 그리고 운전사가 좋아야 사고 없이 차를 잘 운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몸․기․마음이 조화로와야  좋은 사람, 즉 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심신(心身)을 수련한다고 할 때, 중간 요소인 기(氣)가 빠져 있는데, 이 기에 대해서 알아야 선도에 접근 할 수 있다. 마음 공부는 평소 종교 단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몸공부는 각종 운동이나 체육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기에 대한 공부는 단전호흡이나 기공(氣功)수련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현재 우리 나라에는  선도 계통의 각종 기(氣) 수련 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직․간접으로 기 수련을 한 사람은 200만명을 넘고, 기 수련하는 장소만도 1천여 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선도와 가장 관계 깊은 등산(登山)을 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보아 실로 우리 나라는 선도(仙道)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언가들의 말대로 현대 문명이 가져다 준 위기 상황에서 겨레의 얼로 그 옛날 한․단시대의 대운이 다시 꽃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이 기(氣)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생명 에너지, 힘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기운이 충만할 때 밝고 긍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며 기운이 없을 때 귀찮고 짜증이 나고 자신감이 없게 된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에는 기와 관계되는 말들이 많이 있다. ‘공기, 전기, 자기, 기운, 기막히다, 기절하다, 기가 차다, 상기되다, 분위기, 기지개 켜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 기는 천지(天地)에,  우주 만물 곳곳에 두루 편재해 있다. 그러나 이 기는 물질 차원 그 이전의 존재라 색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하며, 각종 현상과 작용으로 나타난다. 이제 서양 의학에서도 기를 인정하게 되었으며, 수련해 보면 푸르스럼한 아지랑이․안개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끈끈하게 만져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사용한 수련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 기에는 원기(元氣), 정기(精氣), 진기(眞氣)가 있는데, 원기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기운이고, 정기는 특별히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음식물을 먹고 호흡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기운이다. 이 정기의 정(精)자라는 글자는 쌀 미(米)와 푸를 청(靑)으로 나뉘는데, 이 미(米)자가 지기(地氣)이며 청(靑)자가 천기(天氣)이다. 즉 천지기운이다. 이 천지기운인 정기가 원기를 도와주지 않으면 생명의 불이 꺼지는 것이다. 진기는 수련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기운으로 마음을 쓰는 데에서 나오는 기운이다. 마음의 수준에 따라 진기의 수준이 달라지는데 이 진기를 터득해야만 힘차고 밝고 맑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선도(仙道)에서는 단전호흡을 통하여 이 생명의 근원에 해당하는 기의 실체를 느낄 수 있으며, 이 기를 축적한 후에 운용(運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단전호흡이란 말 그대로 가슴이 아닌 단전으로 숨쉬는 것을 말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단전에 기를 모으는 호흡을 의미한다. 단(丹)은 기(氣), 곧 생체 에너지를 말하며 또한 정기신(精氣神)을 한마디로 줄여 단(丹)이라고도 한다. 전(田)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밭이라는 뜻이다. 단전은 배꼽 밑 약 5센티에서 배 속으로 약 5센티 들어간 곳으로 우리 몸의 중심 자리이며, 몸안의 에너지를 모아두는 창고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호흡(呼吸)이란 태어날 때 숨을 내 쉬어(呼) 죽을 때 숨을 들이마시기(吸)까지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생명의 기본 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이 단전호흡을 통해 기를 터득하고 축기(蓄氣)가 되면 아랫배가 충만해지고 전신에 힘이 생기는데 그때 배꼽을 중심으로 허리띠를 돌리는 부분의 경락이 열리면서 기운이 흐르게 된다. 이를 대맥 유통이라고 하는데 선도에서는 대맥을 돌릴 때까지를 단전호흡이라고 한다.   선도수련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 따라 여러 가지 호흡의 단계를 맞이하는데 단전호흡, 체식(피부호흡), 족심식(발바닥호흡)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단계마다 축기과정, 운기과정, 소주천, 대주천의 과정이 있다. 여기서는 기본적인 단전호흡법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기공부의 하나인 단전호흡을 하기전에 몸과 마음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데 초보자는 기혈순환이 잘 되도록 도인체조라는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지극한 정성으로 의식을 단전에 모아 그야말로 정성수련을 해야 한다. 초보자는 누워서 하는 와공부터 많이 시작하지만 일반적으로 앉아서도 많이 한다. 우선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리를 곧게 쭈욱 펴고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숨을 내 쉬었다가 천천히 숨을 들이 쉰다. 그 숨을 가슴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단전까지 주욱 내려 보낸다. 들숨이 단전에 들어가 아랫배가 불룩 나왔으면 그 다음 단계는 아랫배가 서서히 꺼져들게 숨을 천천히 내쉰다. 이렇게 호흡을 생활화하다 보면 심신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몸의 떨림 현상인 진동이라든가 기의 흐름에 따라 춤을 추게 되는 단무(丹舞), 그 밖에 특이 공능 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고질적인 질병이 치유가 되기도 하고 집중력이 배가 되어 공부를 잘 하게도 된다. 그러나 수련을 잘 못 했을 때 야기되는 부작용도 더러 있어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단계별로 확실한 방법을 알고 했으면 한다.
  얼마 전 ‘파랑새는 있다’라는 드라마에서 눈으로 촛불을 끄고 공중부양을 한다고 쓸데없는 기를 낭비하는 것이 비춰졌는데 선도(仙道)는 그런 것을 공부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초능력을 부리는 초인이나 영웅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기․마음을 조화롭게 하여 깨달음<성통(性通)>을 얻고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 세상에서 다하는 데<공완(功完)>에 있다.   우리 한겨레는 ‘한 (숨)결 사이에’ 존재하는 민족으로 나와 남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인 ‘우리’로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를 ‘암’하고 닫아두면 바로 남이 되어 버리는데, 그런 나뿐인 ‘나쁜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로서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우리 겨레 모두가 선도(仙道) 수련을 생활화해야겠다.   오늘날 세계화다 국제화다 하는 마당에 너무 우리 것만 강조하면 국수주의자라 오해도 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소중한 정신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한인, 한웅, 단군 시대는 다음으로 미루고라도 고구려 때의 조의선인(早衣仙人) 제도, 신라 때의 화랑도, 고려 때의 도선 사상 등의 그 도맥을 오늘날 일고 있는 선도(仙道)로써 되살려 지구 대환란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하겠다.   지금 당장 나부터라도, 작은 것부터라도 늘리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구현에 앞장 서 나갈 때 우리의 장래는 밝을 것이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요, 천지 기운이 내 기운이요 내 기운이 천지 기운이며, 천지 마음이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천지 마음임을 알고, 언제 어디서나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깊고 편안히 하며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의식을 단전에 집중시킬 때, 몸에서 신기(神氣)가 발동하며, 진리가 한얼이 되어 우리 머리 속에 내려와 있을 것이다.     (1995.9.6.심뫼)
 
 
 
 

푸른 산을 가꾸며
-나의 교직관-

 
1. 내 삶의 철학과 교직 선택 동기   
  나는 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교직 16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왔고, 또 무엇을 바라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점인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내 생을 놓고 무척이나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고교 시절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읽으면서, 양주동의 면학의 서를 통해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  배우면서어떻게 사는 게 참된 삶이며, 진정한 행복인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독서와 배움과 갖가지 사색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겠지만 교직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내 삶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은 고3 때 지은 내 삶의 철학이 들어간 내 이름자 삼행 시조이다.  
   엄정한 마음가짐 군자절(君子節) 꽃피우고    
   영원한 진리 속에 몸 태워 밝힌 촛불     
   섭리에 길이 푸름이 심산(心山)에서 샘솟도다.
   어느 날 나는 촛불 명상을 하면서 촛불처럼 살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촛불이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거룩한 뜻은 좋지만 바람 앞에 너무나도 연약함을 알고, 보다 영원한 것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마음의 푸른 산 가꾸기이다. 이 때부터 산은 내 그리움의 대상으로 자리하며, 내 삶의 철학적인 바탕이 되어 왔다. 내가 추구하는 정신 세계는 깊푸른 산이었다. 고교 시절 ‘십장생’이란 시조를 지으면서 내 삶 자체도 산이고자 했다.
  솔가지 구름 걸려 거북 사슴 노니는 곳    
  둥근 돌 시린 물이 태양 빛에 영롱이니   
 학 타고 청산에 들어 불로초를 캐어 보렴
   이처럼 나의 이상향을 설정해 놓고 내 마음도 푸른 산이고자 했다. 청산에 들어 진리의 불로초를 캐고 싶었다. 퇴계 선생의 시조처럼 만고에 푸른 청산, 주야에 그치지 않는 유수(流水)가 되어 만고상청(萬古常靑)을 하고 싶었다. 산의 초목이 태양의 은혜를 받고 자랐듯이 나도 그 혜택을 남에게 주는 삶을 원했다. 깊푸른 산이 된다면 신선한 공기는 끊임없이 제공될 것이며, 맑은 물은 흘러 넘칠 것이며, 온갖 짐승들이 깃들 수 있을 것이며, 구름은 신비롭게 산을 감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92년부터 선도(仙道)수련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나는 더욱더 산의 고마움을 느끼며 산과 하나가 되어 갔다. 산은 내게 정기(精氣)를 전해 주며, 천지 기운을 느끼게 해 주었다. 현실적으로도 나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산에 깃들여 살면서 산을 사랑하여 왔고, 지금도 한 산악회의 등반대장을 맡으면서 즐겨 산을 찾고 있다한편 사춘기 시절, 내게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픈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를 갓 졸업한 형님이 죽고, 이듬해에는 여동생이 죽고, 그 다음해에는 55세 되신 아버지 마저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러한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맹자의 진심장구에서 천하에 왕 노릇 하는데 즐거움이 있지 아니하고, 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는 게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럼이 없는 게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게 세 번째 즐거움이라 하였는데, 이를 내 삶과 결부시켜 보면서 첫 번째 즐거움이 나에게 거리가 먼 이상, 두 번째 즐거움은 평생 나의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세 번째 즐거움을 얻기 위해 교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내 비록 깨어나 있지 못해 황량한 산이라 할지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정성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 산은 울창해 질 것이고,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푸른 산을 생각하며 나무 한 그루라도 심고 가꾸는 정성으로 살아간다면, 늘 큰바위 얼굴을 생각하던 사람이 언젠가 큰바위 얼굴이 되듯이, 나도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 그리움에서 깨달음으로
   한 때 내 삶의 화두(話頭)는 ‘그리움’이었다. 교직을 선택할 때에도 학생들에게 무한한 그리움의 꿈을 심어 주고 싶었다. 내가 추구하는 청산에 대한 그리움,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 먼 곳에 대한 그리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 학문에 대한 그리움, 그리운 이에 대한 그리움! 이처럼 그리움의 대상은 너무나도 많았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롭고 무언가가 그리울 때도 많았다. 전생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그리움은 나를 문학 쪽으로 인도하여 국어 과목을 좋아하게 하고 국어 교사가 되게 했다.
   교직을 맡으면서 나의 화두는 깨달음쪽으로 바뀌어 갔다. 우주와 나와의 관계, 자연과 나와의 관계, 남과 나와의 관계 속에 내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궁구(窮究)하는 철학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 우리 반의 급훈도 생각하라 그리고 깨달아라로 정해 놓고 학생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교육을 하고 싶었고 더러는 그렇게도 해왔다. 수업시간 이외에도 조례시간에 명상의 시간을 갖거나, 불교학생회 지도 교사, 특별활동의 기공, 태극권 지도 교사를 맡으면서, 학생들에게 깨달음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소월의 시구(詩句)처럼 내가 꽃이 되지 못한 상황이다.   얼마 전 노암 촘스키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서 훌륭한 교사란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진실을 깨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진실을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찾아가며, 역사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역사의 참여자가 되라고 한 말을 상기해 보면서, 학생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3. 참과 너그러움으로   
  좋은 선생님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연찬(硏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며, 교사의 노력에 의해 좀더 잘 꿰어질 때 더욱 값진 보배가 될 것이다. 교사에겐 유능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가르치는 기술 이외에도 마음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마음 바탕으로 너그러움을 말하고 싶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말에 이라는 게 있다. 한자어로는 정성 성()’자가 되겠는데, 이를  아주 좋아하여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왔다. ‘맹자에 이르기를 참된 것은 하늘의 도리이며 참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하여, 지극히 성실하다면 남을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참전계경의 성장(誠章)에서도 정성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자신의 참본성을 지키는 것이다.”라 하여 을 강조하고 있다. 정성은 인성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할 말이라고 본다. 또한 너그러움의 미덕이 있어야 대인 관계를 원만히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몇 해 전 어느 날, ‘사서(司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내가 교감선생님과 함께 도서실에 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서실이 난장판이었다. 선배들이 후배에게 물려줄 학습참고서를 도서실에 늘여 놓고 재학생으로 하여금 가져가게 하였는데 서로 가져가느라고 그랬는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순간 나는 꾸지람을 당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교감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손수 흩어진 책과 인쇄물, 종이 조각들을 주워 모으시는 것이었다. 뒷정리는 내가 마쳤지만 그 교감선생님(지금은 퇴직하셨지만)의 너그러움이 내게는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처용의 너그러움보다 내게 있어서는 훨씬 교육적 효과가 큰 가르침이었다.
 
4.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나는 불지종찰의 대가람 통도사 밑에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불교를 많이 접하게 되고, 또  불교 재단의 중학교를 3년간 다니게 되고, 대학 1학년 때에는 1년간 절에서 살게 되고, 3, 4학년 때는 대불련 활동을 하게 되었다. 또 그러한 인연으로 불교학생회 지도교사를 맡게 되고, 동부경남 교사불자회(현, 울산교원불자회) 창립 회원으로 참가하여 지금껏 활동하고 있고, 통도사 불교 청년회 창립에도 동참하는 등 종교적인 활동도 많이 해 왔다. 그런 중에 너에게 돌이켜 볼 때 지혜가 열린다는 반야(般若)를 좋아하며, 호흡을 바라밀(波羅蜜) 즉 비단물결처럼 꿀처럼 달콤하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실천적인 행위를 좋아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과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만 잘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동시에 성불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교사는 모름지기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는 나의 교육대학원 입학 동기와도 관계된다.
 
5. 성통 공완(性通功完)   
  내가 보기에 우리의 교육은 우리 민족의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 제5장 진리훈에 보이는 성통 공완(性通功完)하는 쪽, 다시 말해 바로 성품을 트고 공적을 완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는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 수련이라는 전문적인 수련과정이 필요하겠지만, 학교에서는 전인 교육을 지향하여 교육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보아진다.
   우리의 ‘천부경(天符經)’ 중에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의 본성을 태양처럼 환하게 밝힌 자에게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들어가 있다는 말로, 이는 성통한 자, 즉 참된 깨달음에 이른 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들은 절로 진리로써 세상을 열어 갈 것이며, 우리의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구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공부해서 남 주자를 강조하고 싶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고 진리를 깨달아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맘이 열릴 때 진정 이 세상은 밝아지지 않나 싶다. 학과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참된 인간성을 갖춘 학생에게 더 정이 가듯, 인성의 바탕 위에서 창의성을 열어 주는 교육을 바라고 싶다  
 
6. 마무리
   오랜만에 내 마음의 산을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그리움으로 가득 찬 나의 산에서 이제는  하나하나 깨달음을 추구해 가고자 한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참된 꿈이 넘치고, 바위처럼 변함없는 너그러운 자태로 새소리도 들어가며, 물소리마다 정겹고, 꿈꾸며 사랑하기에 넉넉한 푸른 산을 가꾸고 싶다. 학생들과 함께 선학(仙鶴)을 타고 진리의 불로초를 캐어, 영원한 즐거움을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학생이 있어 즐거운 삶, 그것이 교사로서의 보람된 일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접는다.
   (2001년 5월.
심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