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선배 특별 기고>
꿈을 위해 달리는 ‘보광인’이 되자
보광고 제1회 육군준장 선종출
(現 대한민국 육군 헌병병과장)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오색찬란하게 물들었을 영축산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학창시절 추운 날씨 속에서도 운동장을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지는 이때, 새벽을 깨우는 통도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저마다의 꿈을 향해 젊음을 불태우던 보광인들의 열정에 다시금 제 심장이 요동침을 느낍니다.
안녕하십니까, 후배 여러분! 저는 1회 졸업생 선종출 장군입니다. 여러분처럼 ‘지기(知己), 협동(協同), 정직(正直)’의 교훈아래 꿈을 키워 왔던 또 한 명의 보광인입니다. 현재는 국가방위의 중심군 육군에서 군 사법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헌병의 병과장으로 재직하며 군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교지에 실릴 기고문을 준비하며 과연 어떤 내용을 적어 내려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 학창시절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아는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식견도 훨씬 넓기에 그 어떤 이야기도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결정한 이야기 소재는 바로 ‘꿈’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큰 고민 중 하나가 꿈이 없거나 꿈을 잃어가는 것이라는 신문기사가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 후배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어릴 적부터 가져왔던 큰 꿈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업과 입시라는 현실의 벽에 막혀 어릴 적 품었던 소중한 꿈들이 점점 작아져감에 가슴 아파 하는 친구들도 많을 것입니다. 솔직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후배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절대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꿈이 없는 삶은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꿈을 쫓지 않는 삶은 결국 후회가 남기 마련이지요.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는 많은 시련과 도전이 닥치겠지만, 시련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는 결국 여러분의 삶을 행복과 성취감으로 가득 채워 줄 것입니다.
이 선배도 어릴 적 품은‘멋진 군인’의 꿈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 친구들처럼 자유로운 대학생활도 하지 못할 것이고, 평생 전국을 내 고향 삼아 근무해야 하는 군인의 삶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대학에 진학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많은 돈을 벌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꿈의 실현을 위해 도전해보지 않으면 분명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도 강했고, 그래서 과감히 꿈을 향한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이지만 이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리고 이 길이 내 꿈을 이루는 길이라면 분명 걸어갈 가치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군인으로서 34년간 복무중인 지금, 전 그 당시 제가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음에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선택 덕분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났으며, 분신과도 같은 아이들을 얻었습니다. 친 형제와도 같은 동기생들을 빼놓을 수 없지요. 또한, 남을 먼저 위하고, 절도와 패기를 멋으로 삼을 수 있는 군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고등학생 시절,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했기에 지금의 제가 있고 제 삶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보광고 후배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젊음이라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강한 힘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도전과 실패는 성공의 밑바탕이자 여러분의 꿈을 실현시켜 가는 지름길이요, 우리의 인생을 살찌워 주는 자양분입니다. 여러분의 젊음을 믿고 끊임없이 여러분의 꿈을 좇기 바랍니다.
꿈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낳고,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큰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명문대 진학과 취직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소망만을 뒤따랐을 때 보다 더 큰 행복과 성취감을 여러분의 인생에 선물할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 경쟁이라는 세상의 조류 속에 스스로 날개를 접는 것은 젊은이에게는 사망 선고와도 같습니다.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항상 꿈을 위해 도전하는 열정으로 여러분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 되어 가십시오. 보광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도전의식과 열정, 인내를 바탕으로 9,000여 선배들이 걸어 간 희망의 여정에 여러분들도 함께 하길 기대합니다.
올 겨울, 사랑하는 교우와 존경하는 스승님과 함께 모든 보광인의 마음의 고향인 보광 교정에서 평생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라며,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선배도 군문에서 조국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주어진 소임 완수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보광인의 자긍심을 널리 떨쳐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고자 약력>
․ 1960년 生, 경남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
․ 1973년 舊조일초등학교(24회) 졸업
․ 1976년 보광중학교(28회) 졸업
․ 1979년 보광고등학교(1회) 졸업
․ 1984년 육군사관학교(40기) 졸업, 육군소위 임관
․ 2013년 장군진급, 現육군본부 헌병실장 겸 헌병병과장
<동문 선배 특별 기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보광고 제1회 양무진
(現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사랑하는 보광고 후배 여러분, 지면으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의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양무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광고를 졸업한 것이 1979년이니, 학교를 떠난지 벌써 34년이 흘렀군요.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답니다. 그래서 학교 선배로서 또한 인생 선배로서 후배님들께 몇 가지 경험담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을 줄로 알지만 ‘공부’를 편하게 생각하시길 권합니다. 저도 수험생 시절에는 ‘농땡이’를 치면서도 대학만 가면 곧 공부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평생 공부의 길을 걷게 되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수험공부에 지쳐 있기에,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끝나고 자신에게 무한한 자유가 찾아오리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껏 살아보니, 여러 종류의 ‘공부’란 멀리 떠나보내려 해도 떠나지 않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야하는 평생의 친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오늘날을 지식정보사회라고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이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기 싫다고 꾸역꾸역 억지로 공부를 한다면, 아무래도 능률이 오르지 않겠지요. 그러니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것의 즐거움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비단 학교에서 책 펴서 하는 공부 뿐 아니라, 마음에 대한 공부, 사람에 대한 공부도 마찬가지로 늘 가까이 해야 하는 친구입니다. 그러니 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깥 사물을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배우고 또 배우시길 우리 후배님들께 권합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원은 이미 직업이 있는 사회인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들도 생업으로 분주할 터인데 이렇게 배움을 갈구하여 학교를 찾아오는 것을 보면 가끔 그들의 향학열에 놀라곤 합니다. 심지어 북한학이 자신의 직업이나 생계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황금 같은 주말에 학교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이들을 학교로 이끌었겠지요. 이처럼 ‘배움’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즐거운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공부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후배님들도 수험 생활이 힘들더라도 담담히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학교에서 많은 추억을 남기십시오. 학창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학교, 특히 고등학교에서 맺은 교우관계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직장에 가서도 지금과 같은 친구는 찾기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었을 때 여러분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옛적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고 손뼉을 치며 늘어놓는 얘기들이 모두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쳤던 장난들, 함께 나눈 고민거리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한마디로 고교시절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 샘이 될 것입니다. 3년 동안 재밌게 지내면, 30년 넘게 써먹을 이야깃거리를 가질 수 있는데 어찌 훌륭한 투자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랑하는 후배님들, 친구들과 함께 많이 웃고, 울고, 떠들고, 재밌게 지내십시오. 이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보니 운명처럼 저는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꽤 재미도 있고 우리 사회와 국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면 좋겠고, 또 장래에 여러분이 일생을 걸고 도전할 만한 일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재미도 있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여러분의 즐거운 고교시절과 창창한 미래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러분, 또 만나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양무진 교수 경력
1960년 8월 15일 경남 양산 생
1979년 보광고 1회 졸업
경남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산학협력단장
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현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현 민화협 정책위원
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전 통일부장관 비서관
※ MBC 100분 토론 출연 몇 차례, 북한문제 관련 수시 방송 출연 중
<동문 선배 특별 기고>
촛 불
보광고 제1회 이경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내 어릴 적 고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저녁이면 촛불과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그때는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을 쓸 수가 없었지만 아쉬운 줄 모르고 지내왔다. 밤이면 온 가족이 평상에 둘러앉아 밤하늘의 별빛 달빛도 볼 수가 있었고, 어머니께서 피운 모깃불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집 앞 실개천에선 ‘반딧불’이도 반짝반짝하며 날아 다녔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는 고추잠자리 잡는다며 뛰어다녔고, 마당위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으로 실에 꿰어 목걸이도 하고 다녔다. 가을이면 감나무의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고, 바람이 휘이익 불때마다 후드득 떨어지는 알밤을 줍느라고 내 유년의 가을은 토실토실 영글어가는 알밤만큼이나 소중히 흘러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TV앞에 앉아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조그만 칩을 넣어서 하는 게임기로 시간을 보내지만,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오로지 자연과 교감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콩쥐팥쥐’ ‘손오공’ ‘헨델과그레텔’ 등을 들으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촛불과 등잔불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런 아름다운 추억과 어린 날의 소중한 경험도 없었으리라!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불을 밝히자 밤도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전깃불이 들어오자 우리 집에도 TV, 냉장고, 전축을 사게 되었고, 전축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마냥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利器)인 전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이지만, 때로는 무서운 도구가 되어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 쓰나미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어 지금까지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에서도 쓰나미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물과 함께 휩쓸려 떠내려갔다. 몇 해 전 ‘해운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제 쓰나미는 남의 나라에만 발생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렇지만, 이건 모두 다 우리 인간들이 만든 재앙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겠다.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보호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지킴으로써 무한한 자연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지구와 함께 공생공존(共生共存)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선, 지구의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다니면, 자동차의 대기가스도 줄일 수 있고, 에어컨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열기도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화하니 되도록이면 조금만 켜야 되겠다. 또한 가급적이면 인스턴트식품이나 1회용품도 적게 쓰고, 주방세제나 합성세제도 소량을 써야 물의 오염을 막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풍력이나 화력발전소 또는 태양열로 서서히 바꾼다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우리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독도의 해저 깊숙이 묻혀있는 가스층을 개발해 우리의 대체 에너지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호시탐탐 우리의 독도를 뺏으려는 일본의 야욕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촛불-스스로를 태우면서 주위를 밝히는 촛불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가까운데서 찾을 수가 있다. 우선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한 국군 장병들도 있는가 하면, 화재와 수해의 현장에서 국민들의 목숨을 구하다 떠나간 의로운 넋들도 있고, 성직자 중에서는 법정 스님이나 테레사 수녀, 김수환 추기경 같은 위대한 분들이 있었기에 혼탁한 우리 사회를 바로 이끌었으며,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을 피울 수가 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투혼을 보면서, 그들도 분명 촛불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 왔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큰 꿈을 향해 달려와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따는 태극전사들의 눈물과 꿈과 의지를 보면서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희망찬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그래서 얼어붙은 동토의 땅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지금도 끊임없이 테러와 전쟁을 일삼는 중동에도 활활 타오르는 저 촛불을 밝혀 주리라!
<방송대 부산 국어국문학과 문예지 ‘낟가리’ 최우수상 수상작>
<동문 선배 특별 기고>
일기 외 1편
보광고 제30회 정경봉
일 기
묵은 일기를 꺼낸다
내 어린 날 병력이 고스란히 담긴 흙의 기록
성기게 엮인 우이모(牛耳毛)의 붓으로 자정을 횡단하던
바야흐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의 세월,
열에 들뜬 목동이 거닐던 너른 캔버스에는
흙 아래 몸져누운 아비의 언어가 있고,
세상을 가르치는 어미의 사라진 지문이 있고,
치기로 철저히 무장한 천방지축의 사내가 있었다
언젠가 불놀이의 기억이 이와 비슷했는데,
흔적을 찾아 헤매다 옳음과 옳지 않음의 경계를 허물고
내 왼손 검지에 가늘고 긴 상흔을 새겼던 날
원목 냄새 향긋한 광에서 꺼낸 일기는
어느새 저릿한 겨울을 견디고 있다.
(제89회 월간 <모던포엠> 시부문 신인작품상 수상작)
[ 수상소감 ]
밥 한 공기만큼의 울림이 있는 시 근 십 년, 칠흑 속에서만 있던 저의 시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봅니다. 그 누군가 읊조렸다지요.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는 동이 트기 바로 직전이다.” 라고. 그래서 저의 이전 시간들은 그토록 어두웠나봅니다. 늘 겉으로 내보일 길이 없어 속으로만 타박하고 보듬었던 卒詩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전율과 감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시를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던 은사님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늘 ‘시인은 공사판의 일꾼보다 서너 수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시를 쓰는 것에 겸손해라. 네가 지금 쓰는 시가 밥 한 공기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헤아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밥 한 공기 같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적어도, 그만큼의 울림을 전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동안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수많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때껏 몸으로 세상을 가르쳐주시는 어머니,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늘 증명해주고 있는 주위의 모든 지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러한 영광을 제게 허락하여주신 전형철 발행인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분들에게 더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챔피언
보광고 제30회 정경봉
삼호선 사직역이었다
왕년에 챔피언이었다는 그가
글러브 대신 들고 있는 고무장갑
링에 오르는 것보다 지하철이 익숙한 듯 보이는 그가
말문을 튼다
이 고무장갑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노약좌석 할머니가 기어코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낸다
한 번도 챔피언인 기억 없던 챔피언의
질기디 질긴 과거가 팔려간다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
아직은 마지막 라운드가 남아있는 듯
그를 다시 본 것은 이틀 뒤 이호선 가야역이었다
왕년에 전과자였다는 그가
한 쎄트의 칼을 꺼낸다
이미 칼은 시퍼렇게 도장을 하고 싱글벙글 웃고 있다, 다시 그가
말문을 튼다
이 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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