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기,마음수행

천성산 적멸굴

마음산(심뫼) 2006. 4. 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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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적멸굴에서 '동학의 꿈' 영글었다
■ 天日기념일에 찾은 최제우의 수도 현장
수운 대신사 49일 득도 기도 "한울님은 내 안에 있더라"
개벽처럼 '쩍'갈라진 바위 틈 자연동굴엔 사람의 기운 완연

지난 5일 식목일은 나무 심는 날. 1860년 그날에 큰 나무를 심은 이가 있었다.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라고 하지만,학(學)은 동학(東學)이다." 수운 최제우(1824~64). 이날은 천도교가 열린 날(天日기념일). 수운은 한울님을 만나는 위대한 체험,즉 득도(得道)를 했다.

경남 양산 내원사 부근 천성산의 적멸굴(寂滅窟)은 득도하기 전인 1857년 7월,그러니까 33세의 수운이 처음으로 49일간 기도를 한 곳이다(1856년 내원암의 기도는 47일째 멈춰졌다).

이날 동행한 구종현 천도교 부산시교구 교화부 차장은 "이곳은 수운 대신사(大神師)가 내면의 한울을 찾는 공부의 방법적 전환을 보이기 시작한 곳"이라고 했다. 동학의 꿈을 실현시켰던 몇 안되는 곳의 하나이다. 동학의 꿈? 도올 김용옥은 "동학은 기나긴 조선역사의 연속적 토양에서 피어난 정화(精華)"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원사 조금 못미쳐 왼편의 개울을 건너 가파른 산길을 헉헉거리며 1시간(빠른 걸음 30~40분)을 오르니 멀리서 적멸굴이 '큰 바위 얼굴'로 나타났다. 해발 536m. 천성산 중앙능선 길의 조금 아래쪽이었다.

이미 해발 447m의 바위 턱에 섰을 때,천성산의 뭇 능선과 봉우리들은 공중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적멸굴 코앞의 대나무밭은 푸른 터널이 되어 길을 내고 있었지만 이곳을 오르는 길이 모두 흐드러진 진달래 꽃밭이었다.

자연동굴 적멸굴은 사람의 기운이 완연했다. 빗자루 세숫대야 등속도 있었고,갑오동학혁명의 동력이 됐다는 '안심가(安心歌)'의 인쇄물도 있었다. 굴 안쪽에는 석간수가 방울방울 떨어져 모인 물이 바위 위에 말갛고 차게 고여 있었다. 아랫마을에 "경주 최복술(수운)이 와서 도통하여 수리가 되어 날아갔다"는 말이 여지껏 전한다는 굴! 똑똑 듣는 물방울,혹은 졸졸거리는 물,이끼,그리고 개벽처럼 쩍쩍 갈라진 거대한 바위 틈…. "옛날에도 이곳을 와 보았는데 오늘 다시 와서 보는구나." 1909년 내원암에서 49일 기도를 마치고 이 적멸굴을 처음 찾았던 천도교의 의암 손병희가 했던 말이다. 의암은 내원사 초입의 바위에 그때 함께 기도했던 일행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적멸굴에서 내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원효봉과 화엄벌이 시원하게 전망된다.

역시 이날 동행한 최평남 천도교 성지개척단장은 "수운 대신사가 기도를 통해 이른 곳은 '성품의 자리'이다"라고 했다. 성품의 자리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없어지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라고 한다.

수운이 경주 용담에서 득도한 1860년 허공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데 7~8개월여에 걸쳐 그 소리를 찾다찾다가 이른 것이 "그 소리,한울님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더라"는 결론이었다. "만물 안에 한울님이 있습니다." 그때 적멸굴 천장에서 물방울 하나가 '똑-'하고서 정수리에 큰 소리를 내며 꽂혔다. 구종현 교화부 차장은 "적멸굴을 품은 천성산,그것이 부산 경남에 있다. 그뿐이겠는가. 부산 경남은 위대한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고 말했다.

최학림기자 theos@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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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에 내(마음산)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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