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첩첩 두루 적막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승려로서 도 닦기도 어려운 판에 조오현은 시조를 쓰는 일에 바쁜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설악산 산감이라고 한다. 강원도 백담사 회주스님으로 있으면서 해마다 만해선사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거창하게 벌이고 있다. 1970년대 초에 그는 김천서 한 이십 리 쯤 떨어진 계림사라는 작은 절에 살았는데 그때 마침 백수 정완영 선생이 김천에 있어 그 분을 자주 뵙고부터 시조 쓰는 일에 신열을 다하더니 이렇다 할 시조시인이 되었다. 그는 밀양이 고향이고 어려서 절에 들어가 불교 공부를 하였다. 시조에 열을 올리는 자신을 일러 "중이랄 것 없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지랑이'라는 작품은 자신의 구도정신을 잘 나타내었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 돌아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평 : 임종찬·시조시인·부산대 국문과 교수 >